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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즈타바는 10대 시절 이란과 이라크 전쟁에 자원입대해 혁명수비대 지휘관들과 긴밀한 유대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사이인 모즈타바와 지휘관들은 상하 관계가 아닌 서로를 동료로 생각하며 이름으로 부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모즈타바의 부재로 인해 이란 내 강경파인 혁명수비대에 힘이 실린 배경이다.
모즈타바와 가까운 정치인 압돌레자 다바리는“모즈타바는 마치 이사회 의장”이라면서 “그는 혁명수비대 지휘관들로 구성된 위원회 위원들의 조언과 지침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위원들이 집단적으로 모든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모즈타바의 안전에 대한 우려, 부상 상태, 접근성 등도 혁명수비대 지휘관들이 의사 결정권자가 된 배경 중 하나다. 모즈타바는 선출 이후 서면 서명만 발표했다. 그는 아직까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으며 그의 목소리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현재 그에 대한 접근은 극히 제한적이며 부상을 치료하는 의료진에 둘러싸인 것으로 전해진다. 모즈바타는 부친 폭사 당시 공습으로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최고지도자로서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영상이나 음성 서명은 지양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현재 의식이 명료해 주변 상황에 반응하고 있으나 한쪽 다리를 세 차례 수술을 받았으며 의족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란 고위 당국자들은 전했다. 한 손도 수술을 받았으며 서서히 기능을 회복 중이다. 얼굴과 입술이 심하게 화상을 입어 말하기 어려운 상태로, 결국 성형 수술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손으로 직접 작성돼 봉투에 봉인된 뒤 신뢰할 수 있는 전달원에게 전달되며, 그들이 고속도로와 샛길을 오가며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은신처로 이동한다. 사안에 대한 지침 역시 같은 경로를 통해 되돌아온다.
강경파 군부의 힘이 커지면서 성직자들의 영향력은 약화된 것으로 관측된다. 영국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 중동 국장은 “모즈타바는 아직 완전한 지휘권이나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지 않다”며 “아마도 그에게 예우를 표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는 공식적인 방식으로 결정을 승인하거나 의사결정 구조의 일부로 참여하는데, 현재 그는 이미 결정된 사안을 보고받는 입장”이라고 평가했다.
혁명수비대는 1979년 이란 혁명 직후 창설되었다. 혁명 지도자였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왕정에 충성했던 기존 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체제 수호를 위한 별도의 군사조직을 구축했다. 이러한 태생으로 하메네이 치하에서는 군 총사령관 직을 겸한 유일한 종교 지도자인 그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전쟁 시작과 함께 하메네이가 폭사하면서 공백과 기회가 생겼다. 이후 혁명수비대는 모즈타바를 지지하며 결집했고, 그가 이란의 제3대 최고 지도자로 선출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혁명수비대는 다양한 권력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총사령관은 아흐마드 바히디 준장이다. 새로 임명된 최고국가안보회의 의장인 모하마드 바게르 졸가드르 장군은 혁명수비대의 전직 강경파 지휘관이다. 야히야 라힘 사파비 장군은 지휘관으로서 하마네이 부자의 최고 군사 고문을 역임했다.
국제위기그룹(ICG) 이란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알리 바에즈 국장은 “모즈타바는 최고 지도자가 아니다. 명목상 지도자일지는 몰라도,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방식으로는 최고 지도자가 아니다”라며 “모즈타바는 혁명수비대에 종속되어 있다. 자신의 지위와 체제의 존속을 그들에게 빚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외교 문제도 혁명수비대가 주도해 결정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내각은 배제된 채 식량과 연료의 안정적인 공급 등 국내 문제에만 집중하고 국가 기능이 원활히 유지되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전쟁 전 미국과의 협상을 주도했던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이 협상 과정에서 배제되었다고 전해진다. 모즈타바는 이같은 혁명수비대 결정에 따랐으며, 이의를 제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고 이란 당국자들은 전했다.
미국과의 일시적 휴전에 합의하고, 비공식 외교 채널 및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승인한 것도 바로 혁명수비대였으며, 2차 고위급 협상 무산을 결정한 것도 그들이었다고 NYT는 전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SNS) 위협과 이란 선박 나포에 분노한 것으로 전해진다.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미국과의 협상에 적극적인 입장이나 결국은 혁명수비대 지휘관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