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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은 대학생 김진명(27)씨는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중구의 한 보신탕 집을 찾았다. 김씨는 “개고기 논쟁은 사실 매해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서 이제는 지칠 정도”라며 “사회적인 합의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식용 개고기를 둘러싼 논쟁은 해묵은 갈등이다. 반려동물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가면서 보신탕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복날 보신탕집은 문전성시다. 개인의 기호일 뿐이라는 의견과,
◇ 초복 맞은 보신탕집 자리 없어 대기손님으로 장사진
직장인 한성태(37)씨는 회사 동료 세 명과 서울 양천구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한 보신탕 식당을 찾았다. 평소 보신탕을 즐겨 먹지는 않지만 ‘복날’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동료들과 의기투합했다.
한씨 일행 중에는 보신탕이 처음인 사람도 있었다. 한씨의 동료 천인호(35·회사원)씨는 “개고기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지만 접할 기회도 없었다”며 “기대 반 걱정 반이다”라며 웃었다.
복날을 맞은 식당의 종업원들은 오전부터 점심 손님 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직원들은 식당 테이블에 김치, 양파 등 각종 반찬을 놓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식당직원은 “지금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점심때에는 손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11시를 넘어서자 30도가 넘는 폭염에도 가게 앞은 보신탕을 먹기 위한 손님이 10명 가까이 줄지어 섰다. 간편한 등산복 차림의 동네 주민들이 대부분이지만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도 눈에 띄었다. 배모(53)씨는 “서둘러 택시를 타고 왔는데, 벌써 줄을 서 있어 놀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정오가 되자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80석이 넘는 가게는 이미 꽉 들어찼다. 가게 안채와 지하 홀을 열고 앞마당에 천막까지 쳐 손님을 맞았지만 이마저도 부족했다. 종업원은 탕을 주문하는 손님들에게 “30분은 기다려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직원들이 홀로 식당을 찾은 손님들에게 합석을 부탁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생면부지인 다른 손님과 합석을 한 심학순(67·여)씨는 “오늘 같은 날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며 “내가 날을 잘못 택했다”며 웃었다.
포장손님도 줄을 이었다. 남성 직원은 영수증을 들고 “수육 2개, 탕 2개 시키신 분”이라며 포장 주문한 손님을 찾기 바빴다. 가게 앞은 포장 손님과 가게에서 먹으려는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포장을 하러 왔다는 채영훈(42)씨는 “포장을 하면 금방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15분 넘게 기다리고 있다”며 땀을 닦다 자신이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서둘러 받아갔다.
복날인 이날 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유명 보신탕집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11일 3층 건물에 200석 규모인 양천구의 또다른 보신탕 식당에는 영업시간보다 10분 앞선 오전 10시 50분부터 손님들이 줄이어 들이닥쳤다. 주로 중년 남성들이었다. 점심때가 되자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중구에 위치한 또다른 보신탕 식당은 11시부터 70대 남성 세 명이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또 다른 중구의 한 식당 역시 10명의 손님들이 점심 시간 이전부터 보신탕을 즐겼다. 나머지 50여석은 이미 예약이 끝나 손심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천구 보신탕 식당 사장인 김모(67·여)씨는 “단골뿐만 아니라 개고기를 처음 접하러 오는 손님도 많다. 어린 아이부터 젊은 아가씨까지 다양하다. 가족 단위 손님도 많다. 애완견을 안고 식사하러 오는 손님들도 있어서 곤혹스러웠던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또다른 중구 보신탕 식당 주인은 “복날에만 사람이 많은 게 아니다. 매일 바쁘다. 보통 보신탕을 나이 든 사람들이 즐겨 찾는 줄 아는데, 우리 가게에는 30대 직장인부터 70대~80대 어르신까지 다양하게 찾아온다”고 말했다.
◇ “보신탕, 개인 취향일 뿐” Vs “야만적인 식습관일 뿐”
보신탕집을 찾는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야만인 취급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소고기나 돼지고기처럼 개인의 취향일 뿐이라는 것이다.
양천구 보신탕 식당에 포장 중이던 성모(55)씨는 “평소에 자주 먹는 편은 아니지만 복날이나 몸이 허할 땐 챙겨먹는 편이다”라면서도 “같이 사는 딸이 개를 좋아해서 개고기 먹지 말라고 해 몇 번 다투기도 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손님인 회사원 정태성(30)씨는 “다만 개고기 먹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워낭소리를 보고도 소고기를 먹거나 옥자를 보고도 돼지고기는 잘 먹는데, 굳이 개에게만 감정 이입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행이던 중구 주민인 김광덕(73)씨는 “사시사철 내내 먹을 수 있어서 사철탕 아닌가. 여름뿐 아니라 평소에도 지인들과 보신탕집을 찾는다. 개고기 먹지 말라고 반대도 한다던데, 내 할머니 할아버지 때부터 먹어온 게 보신탕이다. 먹는 게 불법도 아니고 왜들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고기는 먹으면서 왜 하필 개고기 가지고만 그러느냐”고 반문했다.
보신탕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금융업 종사자 임모(32·여)씨는 “직장이 이 근처라 동료들과 같이 왔다. 여름철 별미로 먹는다. 개인의 취향 문제다”라고 말했다.
20년째 보신탕을 즐겨 먹는다는 성남시 주민 홍도범(64)씨는 “우리 가족도 진돗개를 키우지만 개고기를 먹는 데는 딱히 거부감이 없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개고기에 무조건 반대 입장을 취하더라. 이해가 안 된다. 자신이 키우는 개를 사랑하는 것과 개고기를 즐기는 것은 별 개의 문제 아닌가? 왜 남의 기호까지 침해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가축도 아닌 개를 식용으로 해야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개고기는 유통과정이 불명확할 뿐 아니라 비위생적이고, 시대역행적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모(28, 학원강사)씨는 “개가 인간과 친하다는 감정적인 접근을 떠나 비위생적으로 도축되고 유통과정도 불명확한 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며 “이번 복날에도 보신탕 대신 삼계탕을 먹었다. 대체제가 얼마든지 있는 데도 불구하고 굳이 개고기를 찾아 먹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사근동에 사는 박모(26?여) 역시 개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그는 “요즘은 반려견을 화장해 장례를 치러줄 정도로 동물들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며 “그런 의미에서 개고기를 먹는 것은 시대 역행적인 행위”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