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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법원은 A씨가 반복적인 수면제 복용의 위험을 인지했음에도 생명이 위험한 피해자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A씨는 피해자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맺었고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지만 지난 2월 피해자 한차례 성관계를 한 뒤 추가 성관계를 거부하자 1시간 뒤 다량의 수면제를 음료수에 녹여 반복적으로 먹이고 피해자를 강간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1시간 안에 7일 치 수면제 21알을 복용시킴으로써 피해자를 항거불능 상태에 빠지게 만든 것이 인정된다”며 “비록 피해자가 ‘그렇게 하라’고 말한 사실이 있어도 수면제 과다 복용 상태에서 말한 것이라 (피해자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살인 혐의에 대해서도 “피해자는 2번째 수면제를 복용한 뒤부터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전기장판에 장시간 누워 있어 엉덩이에 화상을 입는 등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은 (반복된 수면제 복용이)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법정에서 말했고, 약물에 취해 장시간 누워 발생한 패혈전색전증 때문에 피해자가 숨진 것으로 추정돼 사망과 수면제 복용행위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했다.
다만 법원은 피고인의 나이를 고려해 감형된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형법이 강간살인의 법정형을 오로지 사형 또는 무기징역만 생각하는 점을 봐도 중대 범죄인 강간과 결합된 살인은 책임이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면서도 “(피고인이) 고령이기 때문에 장기간 유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것만으로도 무기징역형의 선고와 유사한 결과에 이를 것으로 본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A씨는 지난 3월 29일부터 4월 3일까지 노숙자인 피해자와 성관계를 가질 목적으로 서울 영등포구의 한 모텔에서 수면제 36~42정을 음료수에 녹여 몰래 먹이고 패혈전색전증으로 사망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패혈전색전증은 굵은 정맥에 생긴 핏덩어리가 혈류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가느다란 폐동맥 혈관을 막아 발생하는 증상으로, 응급조치를 제때 받지 못하면 숨질 수 있다.
피해자는 사망 전 의식을 잃는 등 이상증상을 보였지만 A씨는 구조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는 같은 해 2월에도 같은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수면제 21알을 먹여 강간하기도 했다. A씨는 병원에서 장거리 내원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방식으로 범행에 필요한 수면제를 다량 처방받았으며, 그가 모은 수면제에는 졸피뎀 등 향정신성의약품도 포함돼 있었다. A씨는 범행 후 휴대전화를 버리고 도피자금을 마련했지만 하루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