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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I·CT 이상없어도 치매보험금 탄다…보험사는 10兆 토해낼 판(종합)

박종오 기자I 2019.07.02 18:34:54
[그래픽=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좀 전에 물어본 게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묻는 정도의 가벼운 치매 진단만 받아도 보험금 2000만원을 드립니다. 대신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보고 이상이 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와야 해요.”

요즘 40~60대 사이 불티나게 팔리는 치매 보험의 상품 약관을 요약하면 이렇다. 파격적인 혜택 같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증세가 가벼운 경증(輕症) 치매 환자는 MRI, CT 등 뇌 영상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올 가능성이 커서다. 보험사가 이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이 이처럼 모호한 치매 보험의 약관에 칼을 빼 들었다. 보험사와 계약자 간 다툼을 막기 위해 MRI나 CT 검사 결과가 정상이어도 전문의의 치매 진단을 통해 보험금을 탈 수 있도록 상품 약관을 고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계약자 혜택을 확대하며 판매 경쟁을 벌여온 보험사는 이제 와서 미래에 막대한 보험금 지급 ‘폭탄’을 맞을 수 있다며 걱정하고 있다.

◇MRI·CT 등 뇌영상 검사 이상 없어도 보험금 지급



금융감독원은 대한치매학회와 금감원 산하 보험상품자문위원회, 보험사 논의를 거쳐 마련한 ‘치매 보험 약관 개선안’을 2일 공개했다.

치매 보험은 보험의 보장 대상인 사람이 치매 진단을 받으면 보험사가 거액의 진단 보험금과 매달 간병비, 생활비 등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국내에선 2003년 첫 선보여 최근 판매가 급증하는 추세다. 고령화에 따라 치매에 관심이 높아지고 보험사도 가벼운 치매 진단만 받아도 보험금 1000만~3000만원을 일시에 지급하는 등 보장을 대폭 확대한 신상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해서다.

실제로 2017년 31만5000건에 불과했던 치매 보험 판매 건수(신계약 건수)는 지난해 60만1000건으로 2배가량 급증했다. 올해 들어서는 석달새 무려 87만7000건이 팔렸다. 현재 보험사가 유지 중인 전체 치매 보험 계약(377만1000건)의 약 40%가 작년부터 올 3월 사이 집중적으로 판매된 것이다.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증 치매까지 보장 대상에 포함해 판매된 치매 보험 대부분이 보험금 지급 요건으로 전문의로부터 치매 진단을 받도록 하고 그 근거로 MRI, CT, 뇌파 검사, 뇌척수액 검사 등을 활용하도록 약관에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증 치매는 건강의학과나 정신과 전문의가 매긴 환자의 인지·사회 기능 지표인 ‘임상 치매 검사(CDR)’ 점수가 1~2점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상 대화에서 한 번 물어본 것을 조금 뒤 되묻거나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등 가벼운 치매도 포함한다. 그런데 이런 경증 치매는 MRI, CT 등 뇌 영상 검사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보니 보험사가 이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금감원은 이처럼 경증 치매를 보장하면서도 정작 약관상 보험금 지급 거절 가능성이 큰 치매 보험의 판매 건수가 100만건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치매 보험의 약관상 치매 진단 기준을 “뇌 영상 검사에서 치매 소견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전문의가 다른 검사를 통해 종합적으로 평가해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고 고치기로 했다. MRI, CT 검사 결과 문제가 없더라도 의사가 CDR 점수를 1~2점으로 매기면 경증 치매 진단 보험금을 탈 수 있는 것이다.

또 일부 보험사가 상품 약관에 특정 치매 유형에 해당하거나 환자가 치매약을 일정 기간 처방받아야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명시한 것은 삭제하기로 했다. 치매 진단에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금감원은 이달 중 보험사에 약관 변경을 권고하고 오는 10월부터는 새 약관을 반영한 치매 보험 상품이 판매되도록 할 예정이다. 특히 과거 경증 치매 보험에 가입한 사람에게도 바뀐 약관 조항을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 강한구 금감원 보험감리국장은 “보험업계도 약관을 개선하기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말했다.

◇보험사 “미래 보험금 청구서 걱정”

자료=금융감독원


그러나 보험사는 감독당국의 권고를 받아들이면서도 미래에 보험금 지출이 대폭 늘어날 수 있다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증 치매 진단을 받기가 어렵지 않은 데다 보험 보장금액을 파격적으로 올려 이미 판매한 상품이 워낙 많아서다.

현재 치매 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본격적으로 청구하기 시작할 10~20년 이후에 보험금 지출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국내 생명·손해 보험사가 지금까지 판매한 경증 치매 보장 보험 1건당 1000만원씩만 보험금을 줘도 전체 보험금 지급액은 10조원에 달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치매는 다른 질병보다 진단 기준이 주관적”이라며 “보험 계약자가 돈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의사도 진단을 환자 유치 수단으로 활용할 경우 향후 보험사 예상보다 보험금 청구가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약관 개정이 대규모 보험금 지급 사태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감원 관계자는 “치매 보험금이 한 번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20~30년에 걸쳐 나눠서 지급하는 것”이라며 “보험사가 전문의의 검사 결과를 직접 확인할 수도 있는 만큼 위험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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