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표 보수층인 종교계와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이 이례적으로 ‘테크-트래드’(Tech-Trade) 동맹을 맺었다. 출산율 저하가 ‘국가적 위기’라는 공통된 인식 아래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9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치인 1.6명으로 떨어졌다. 인구 유지 기준인 2.1명엔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도 저출산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기 시작했고, 정치·학계·벤처·종교계 인사들이 다함께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교류의 장도 활발해졌다. 같은 정치적·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성간 만남을 주선하는 행사도 동반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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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종교 보수의 ‘출산 독려 연합’…해법 모색 합심
지난 3월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네이털콘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지지층인 ‘마가’(MAGA) 인사들부터 실리콘밸리 테크노크랫, 헤리티지재단을 비롯한 종교 보수단체까지 각계 각층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당시 JD 밴스 미 부통령은 연설을 통해 “미국엔 더 많은 아기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족 중심 사회를 지향하는 네이털리스트들은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저출산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공동 창업자이자 테크 업계 거물인 마크 앤드리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페이팔 공동창업자이자 페이스북 초기 투자자인 피터 틸 등은 출산 연구·불임 클리닉·유전자 기술 등에 거금을 투자했다. 네이털리스트는 더 많은 아이를 낳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붕괴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뜻한다.
종교 보수층은 낙태 금지와 피임약 지원 축소 등 인구 확대 강령을 밀고 있다. 정치권에선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수태 대통령’을 자처하며 낙태에 반대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최근엔 임신부들에게 타이레놀을 복용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한편, 내년 출범할 ‘트럼프Rx’라는 의약 플랫폼에서 저가 불임치료약 판매도 예고했다.
이처럼 각 진영이 이례적으로 합심하게 된 계기는 저출산 해소라는 공통 목표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의 정책 실패 및 위기를 가까이서 지켜본 영향도 크다. 실례로 한국, 헝가리 등은 각국 정부가 현금 지원, 세제 혜택, IVF 무료화 등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복지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인구감소 저지나 출산율 반등은 요원한 상황이다. 머스크 CEO는 몇 차례나 한국을 콕 집어 국가 미래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방안도 있지만 세계 각국에서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는 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으로 논의 테이블에서 원천 배제된 상태다. 아울러 네이털리스트들은 ‘내부’에서의 자생적 인구 성장에 집착하며, 네이털리즘이 문명 수호를 위한 마지막 보루라는 식의 과격한 선언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너무 극단적인 사상이어서 정책으로 이어지기엔 한계가 뚜렷하다.
백인 우월주의 논란과 맞물려 비판 목소리도
한편 다소 편파적으로 보이는 출산 장려 논의는 반이민 정책·백인 우월주의 논란과도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는 진단이다. 출산 장려 캠페인이 아닌 백인 중심 인종·문화 보존 프로젝트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네이털콘 행사장 밖에서는 반(反)네이털리즘 시위가 벌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테크-트래드 연합이 출산율 저하를 문화적 타락, 진보사회의 실패로 해석하고, 대가족·유전자 강화·우수 아동 육성 등을 신념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진단이다. 네이털콘의 한 참석자는 “여성에게서 선택권을 빼앗으려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관련 논의에는 성 역할·인권·가족의 미래로 이어지는 복합적인 사회 문제가 뒤엉켜 자리하고 있다고 짚었다.
생식기술 윤리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아이 선별 유전체 검사(Orchid), 남성 동성 부부가 생물학적 자녀를 얻을 기술(Conception), 체외수정(IVF)과 관련한 종교적·법적 이슈가 끊이질 않고 있다.
네이털콘을 조직한 케빈 돌란이 과거 백인우월주의·동성애 혐오 발언을 했다는 점, 독일 정보기관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라는 점, 인맥 중심으로 초청자를 선정한다는 점 등도 논란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진보 진영도 유급 육아휴직·보육비 지원 등 출산 장려 정책을 제시할 수 있지만, 저출산 문제에 대한 관심 자체가 낮은 데다 정치적 논란에 대한 피로감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다양한 인종·계급·성별의 참석자가 뒤섞인 네이털콘은 미국 내 저출산 논란과 탈진보·탈진영 동맹의 미래를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며 “출산율 반등은 쉽지 않지만, 이념·기술·믿음이 혼합된 미국 내 새로운 인구정책 해법 실험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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