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트립in 이승희 기자] 꽃만큼 사람을 설레게 하는 것도 없다. 십여 년 전 남해안 여행을 하면서 수선화를 처음 봤다. 이후로 봄꽃 중에 수선화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로 다가왔다. 오리 주둥이처럼 생긴 꽃이 사람의 마음을 끌었다. 수선화의 속명은 나르키수스(Narcissus)다. 그리스어의 옛말인 최면성 ‘narkau’에서 유래 되었다. 수선화의 최면에 걸려서 그런 것일까? 봄이 되면 수선화가 보고 싶어 여수 거문도등대, 거제 공곶이, 서산 유기방가옥 등을 찾아다녔다.
신안 선도에서 수선화 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가슴이 설레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목포행 KTX 기차를 예매했다. 선도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은 3곳이다. 선도와 가장 가까운 곳은 무안 신월항이다. 압해읍 송공항, 지도읍 송도항에서도 들어갈 수 있다. 축제기간 동안 압해읍 가룡항에서 임시 여객선을 운항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조용한 섬마을에 누가 찾아올까? 나같이 섬에 미친 사람이나 찾아오지” 라고 생각했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좋지 않은 날씨에도 꽃을 찾아 날아온 벌과 나비처럼 수많은 사람이 가룡선착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룡항을 떠난 유람선은 25분 후에 선도선착장에 도착했다.
선도선착장에는 ’선도 수선화섬’이라는 웅장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입석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조용한 섬마을에서 수선화 섬으로 우뚝 세워지고 있었다. 선착장 우측으로 수선화 탐방로를 걸었다. 제1회 수선화 축제다. 아직 수선화 꽃밭과 보리밭, 양파밭, 마늘밭이 혼재해 있다. 이 또한 순박한 섬마을의 정겨움이다. 언덕을 넘자 200만 송이 수선화 꽃밭이 펼쳐졌다. 전국 최대규모라는 말이 실감 났다.
축제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선치분교장은 폐교가 되지 않았다. 인구에 비해 많은 농지를 가지고 있는 선도는 농사가 생업이었다. 지도와 무안을 연결하는 방조제가 물길을 막기 전까지는 김 양식도 했지만, 물길이 막힌 후에는 생계를 위해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가야 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 이후 고향을 떠난 젊은이들이 돌아오면서 어촌계를 새롭게 구성했다. 고향을 떠난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낙지 때문이었다. 젊은이들이 돌아온 선치분교에 아이들 웃음소리도 돌아왔다. 선치분교장을 지나 언덕을 오르자 선도교회가 보인다. 그 옆으로 ’수선화의 집’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진 집이 있다. ‘수선화 여인’으로 불리는 현복순 할머니(89세)의 집이다. 선도가 수선화 섬으로 탈바꿈하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하신 분이다. 현관 앞에는 정원 사진이 걸려있고, ’수선화를 사랑한 수선화 여인 현복순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쓰여진 액자가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30년 전 남편을 따라 시집인 선도로 귀향을 했다. 할머니는 집 정원과 주변 밭을 꽃밭으로 만들었다. 10여 년 전부터는 세계수선화를 수집하여, 꽃동산을 이루었다. 그러자 마을주민들도 합세하여 섬 전체를 수선화 꽃밭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접한 신안군에서는 수선화 할머니의 이야기를 연계해 작년 가을부터 선도에 7ha의 수선화 재배단지를 조성하게 되었다. 관광농업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취지다. 수선화 섬 조성 취지에 맞게 주민들 얼굴에도 수선화 꽃이 피기 바란다. 선도, 내년에도 후년에도 다시 찾을 것이다.
◇ 여행TIP
수도권에서는 무안 신월항이 가깝고 접근성이 좋다. 신월항에서 선도까지 15분 소요, 여객선 요금은 편도 2,500원. 축제 기간에는 1시간~1시간 30분 간격으로 여객선을 운항하며, 정기 여객선 운항시간은 신안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교통정보 페이지 참고하면 된다.
신월항에서는 여객선 외에도 도선 선치호가 수시로 운항한다.
목포 방면에서는 압해면 가룡항에서 축제 기간에만 운항하는 유람선을 이용하면 된다. 가룡항에서 선도까지 25분 소요. 축제 기간 여객선 요금은 무료다. 40분~1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
◇ 함께 하면 좋은 여행지
무안 신월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고이도, 선도, 병풍도를 거쳐 압해읍 송공항이나 지도읍 송도항으로 간다. 그 뱃길에 함께 하면 좋은 여행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 고이도 왕산성
고이도는 고려 태조 왕건의 숙부 왕망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섬이다. 왕망은 이 섬에서 고려 왕실의 전복을 꾀하며, 왕이라 지칭하며 살았다. ‘왕망의 산성’이라는 의미의 ’왕산성‘이 현존해 있다. 또한, 고이도는 일제 말까지 왕도라고 불렸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에게 추천한다.
- 병풍도 노둣길
국내 최대의 노둣길을 자랑하는 병풍도는 북쪽으로 신추도, 남쪽으로 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보기도가 물이 빠지면 길이 열리는 노둣길로 연결 되어 있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