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토끼’의 저자 정보라(46) 작가가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소감을 이 같이 밝혔다.
1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정 작가는 “이런 관심은 난생 처음이라 얼떨떨하다”며 “독자들에게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정 작가가 쓰고 안톤 허 번역가가 영어로 옮긴 ‘저주 토끼’는 저주, 괴물, 유령 등 초현실적인 소재를 다룬 단편소설 10편을 담고 있다. 부커재단은 ‘저주 토끼’에 대해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활용해 현대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와 잔혹함을 이야기한다”고 평했다.
한국 작가 작품이 부커상의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은 2018년 한강의 ‘흰’ 이후 4년 만이다. 2016년에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다.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최종 후보는 ‘저주 토끼’를 비롯해 총 6편이 꼽혔다. 수상작 발표일은 다음달 2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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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출간 당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저주 토끼’는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후 15개국에 판권이 팔리며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정 작가가 오랜 기간 썼던 작품 중 SF적인 요소가 명확한 것들만 모아서 내보자는 출판사의 기획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상에서 만났던 장면·사물에서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인물의 경우 그대로 쓰면 당사자에게 모욕과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최대한 비현실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가능하면 현실 상황 논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쓰려 한다.”
저주를 담은 토끼가 온 집안과 사람마저 갉아먹는 이야기, 변기에서 머리가 튀어나오는 이야기 등 기괴한 소재를 통해 정 작가가 정작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인간의 쓸쓸함’이다. 괴물에게 납치돼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자라나는 소년 이야기를 담은 ‘흉터’도 마찬가지다. 정 작가는 “아무리 훌륭한 사회라도 부조리는 존재한다”며 “그런 생각을 계속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피해자들에게는 ‘흉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저주 토끼’가 주목을 받게 된 배경에는 번역가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안톤 허 번역가는 “‘저주 토끼’의 문학성, 그 중에서도 문장의 아름다움에 반해 번역을 먼저 제안했다”며 “‘저주 토끼’가 성공한 건 신기한 일은 아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는 그는 “어느 분이 상을 받아도 제가 받은 것처럼 행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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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작가가 들려줄 다음 이야기는 ‘해양수산물 시리즈’다. 정 작가는 “문어는 썼고 상어, 멸치, 김 등을 소재로 새로운 소설을 쓸 예정”이라며 “포항 남자를 만나 포항으로 시집을 갔는데 제사상에 커다란 문어가 오르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아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고 했다. 두 편의 엔솔로지(특정 주제에 대한 여러 작가의 작품을 묶은 책) 외에 ‘저주 토끼’를 출간한 아작 출판사에서도 새로운 단편소설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러시아 문학 번역가이기도 한 정 작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다만 당장 전쟁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불행히도 고통과 슬픔이 세상에 널려 있다”며 “어떻게 써야 피해자들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문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재밌어서”를 이유로 꼽았다. 정 작가는 “쓰고 싶은 이야기는 굉장히 많다”며 “소수자와 고통 상실에 대해 계속해서 쓰고 싶고, 그밖에 다양한 작품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려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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