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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F2013]샌델·박원순 "갑을논쟁은 갈등 아닌 성숙의 신호"

김재은 기자I 2013.06.12 19:56:59
[이데일리 김재은 김도년 박보희 기자] “경쟁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유일한 체제로 우리 사회를 지배해버리면 위험합니다.”(박원순)

“시장의 역할에 대해 토론기회가 없었던 탓에 한 가지 형태의 자본주의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자본주의가 있습니다.”(마이클 샌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데일리 세계전략포럼 2013에서 특별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데일리 ‘세계전략포럼2013’ 이틀째인 12일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특별대담을 통해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를 위한 대안찾기에 나섰다.

두 사람의 특별대담은 여러모로 관심을 끌었다.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로 유명세를 타면서 한국 사회에서 사회정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시민운동가로 시작해 사회적 약자 편에 선 행정가로 변신한 케이스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의 평가처럼 자신의 사상을 현장에서 직접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박원순 시장과 강단에서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면서 토론을 이끌고 있는 샌델 교수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 경제민주화 논쟁 ‘긍정적’

먼저 샌델 교수가 ‘경쟁 위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로 운을 뗐다. 그는 “시장경제는 하나의 도구일 뿐 사회 전체를 규정해선 안 된다”면서 “시장의 역할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던 탓에 자본주의의 형태가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시장경제’의 이점은 취하되 시장이 사회 전체를 좌우하는 ‘시장사회’는 막아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반영된 발언이었다. 시장사회란 시민사회와 도덕적 가치 등 비시장적 가치가 훼손되면서 돈으로 대부분의 것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박 시장도 “다양한 종이 있어야 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종 다양성’ 이론처럼 우리 사회도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실천방식을 다양하게 검토하고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같은 연장선 상에서 두 대담자 모두 최근 한국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 민주화 등 거시적 담론에 대한 고민과 논쟁을 높이 평가했다. 이런 논의 자체가 한국 사회의 희망을 보여준다는 얘기다.

샌델 교수는 “여러 나라를 여행해보니 한국처럼 정의와 시장경제 문제가 광범위하게 논의되는 곳을 보지 못했다”며 “과거 급격한 경제 성장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을 공론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들은 ‘부와 행복의 관계’, ‘시장의 자유와 시민사회의 자유’ 등과 같은 질문들이 공론화된다”며 “이런 현상은 사회적 갈등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성숙해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박 시장도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경제 성장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했다”며 “성장과 발전, 민주화는 완성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끝없이 도전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샌델 교수는 한국은 민주주의가 잘 성숙될 수 있는 사회로 평가하면서 너무 낙관적인 시각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박 시장은 압축적 경제성장과 근대화의 비극이 낳은 긍정적인 단면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박 시장은 “서양과 달리 한국은 최근 100년간 식민지와 분단, 전쟁, 이산가족 등 많은 비극과 불행을 겪었다”면서 “서양이 수백년간 겪은 변화와 충격을 한꺼번에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어 “수세기에 걸친 경험을 한꺼번에 겪으면서 체험과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는 논쟁 능력을 키워줬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논쟁과 갈등이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갈등이나 논쟁 그 자체로 끝나지 않도록 현명하게 풀어나갈 때 한국 사회가 제대로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표시했다.

◇ “소크라테스 되고파”

샌델 교수는 자신의 다양한 대외활동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대해 “소크라테스처럼 되고 싶다”고 밝혔다. 실제 샌델 교수는 1년전 연세대학교를 찾아 1만4000명의 대학생을 청중으로 강연을 펼치는 등 한국에서도 이미 몇 차례 강연한 적이 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정치철학을 공부했는데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철학은 현실정치와 거리가 있는 뜬 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라 사회에 깊이 뿌리를 두고 실생활에서 나타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대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도시를 돌면서 일반 시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철학을 발전시킨 것처럼 샌델 교수 역시 젊은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철학과 삶의 일치를 모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샌델 교수의 강의방식이 일방적 전달이 아닌 질문을 통해 듣는 이들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게끔 하는 것도 같은 연장선 상에 있다. 샌델 교수는 “일방적인 강의로는 철학에 대해 흥미를 가질 수 없다”면서 “담론과 대화가 흥미로운 정치철학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이 같은 샌델 교수의 정치철학을 서울시 행정에 구현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샌델 교수에게 서울 명예시민이 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소크라테스가 꿈꿨던 이상적인 철학의 도시가 되려면 철학이 삶속에 녹아 있어야 한다”면서 “서울은 충분히 철학의 도시가 될 수 있지 않느냐? 함께 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이에 샌델 교수는 “서울의 친한 친구로 남고 싶다”고 화답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특별대담 진행

이날 두 사람의 특별대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이뤄졌다. 600여명의 관심이 집중된 특별대담은 의외로 ‘웃음’으로 시작했다. “서울시 행정에 샌델 교수의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다”며 운을 띄운 박 시장은 “그런 의미에서 제자로 받아주겠느냐”고 물었고, 샌델 교수는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날 대담은 샌델 교수의 질문과 박 시장의 대답으로 진행됐다. 샌델 교수 특유의 질문식 수업법이 대담에서도 여지없이 적용됐다. 샌델 교수의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박 시장은 “선생이 제자에게 자꾸 질문을 던져 생각하게 만드는 독특한 방식”이라며 이마의 땀을 닦아 청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서울시 행정의 어려움을 얘기하며 “임기를 다 채우면 샌델 교수처럼 머리가 벗겨지고 흰 머리가 늘 것”이라는 박 시장의 하소연에 샌델 교수는 “(박 시장은) 낙관적인 사람”이라고 응수했다.

삼십여분간의 대담이 진행되는 동안 위트있는 샌델 교수와 박 시장의 멘트는 수차례 청중들의 박수와 환호성을 받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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