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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010130) 경영권을 노리는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한국의 지배구조 개편을 강조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바이아웃(Butout) 사모펀드(PEF) 운용사로 자리매김한 MBK파트너스가 향후 투자 방향을 지배구조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오너 경영에 익숙한 국내 기업들에겐 달갑지 않은 소리지만, 선진 지배구조라는 구호 하에 기업의 경영권을 노리는 사모펀드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김병주 회장은 최근 홍콩 IB전문 매체 아시아벤처캐피털저널(AVCJ)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에서 기업 지배구조는 중요한 투자 주제”라며 “기업 지배구조를 겨냥한 사모펀드들의 활발한 투자로 일본 전체 지배구조 시스템이 한층 투명해지고, 책임감 있고 역동적으로 변하는 효과가 있었다”라고 언급했다.
김 회장은 “한국과 일본은 대기업 중심의 구조라는 점은 같지만 한국에선 가족 소유가 일반적이다. (한국의) 대기업 재벌의 경우 3세나 4세까지 소유하고 있다”며 “이에 따른 구조적 장애물이 있긴 하지만 한국은 일본보다 시장 성격이 역동적이기 때문에 빠르게 변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인수 추진 배경으로 지배구조와 주주가치 제고를 꼽은 바 있다. 오너 3세인 최윤범 회장 체제로 운영 중인 고려아연 이사회에 14인의 신규 이사진을 진입시키고, 회사의 경영과 관리감독 책임을 구분하는 집행임원제 도입을 통해 선진 지배구조를 확립하겠다는 의도다.
MBK파트너스가 조성 중인 6호 펀드는 2차 클로징으로 7조원(약 50억달러)을 확보했다. 최종 70억달러(약 9조원) 조성이 목표인데, 이미 80% 가량의 자금 조달을 마쳤다. 6호 펀드 자금이 쌓인 만큼 대형 인수합병(M&A) 건에 베팅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김 회장이 직접 지배구조 개편을 강조한 만큼 경영권 분쟁에 보다 적극 참전할 가능성도 커졌다.
최근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기업들도 대부분 사모펀드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벌써 1년 넘게 가족간 분쟁이 지속 중인 한미약품(128940)그룹의 경우 사모펀드 라데팡스파트너스가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등 모녀 편에 서서 조력하다 최근 모녀가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 3.7%를 사들였다. 송 회장 모녀와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등 3자 연합은 라데팡스의 지분 확보로 4자 연합으로 전선을 확장하게 됐다.
올해 3월 마무리된 금호석유(011780)화학 경영권 분쟁에선 박철완 전 금호석화 상무가 사모펀드 차파트너스자산운용과 손잡고 박찬구 회장을 상대로 ‘조카의 난’을 일으켰다. 박 전 상무와 차파트너스가 요구한 주주제안이 모두 부결되며 분쟁은 마무리됐지만, 사모펀드의 자금력을 등에 업고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주요 사례로 꼽힌다.
티웨이항공(091810)의 경우 대명소노그룹이 사모펀드 JKL파트너스가 보유하던 지분 26.77%를 인수하며 2대 주주에 오르면서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됐다. 현재 티웨이항공 최대주주 예림당과 대명소노그룹의 지분 격차는 3.2%포인트에 그친다. 대명소노그룹은 JC파트너스가 보유 중인 에어프레미아 지분도 인수하며 항공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수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들어 고려아연처럼 경영권 확보를 두고 공개매수를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경영권 분쟁 기업은 분쟁이 없을 땐 승계 등의 이유로 주가가 낮게 유지됐을 수 있다. 경영권 분쟁을 거치면서 기업의 적정 가격이 드러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모펀드 시장이 커지면서 이렇게 분쟁이 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경영권에 대한 프리미엄을 찾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