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피해서 한국 왔는데 난민심사 거부…대법 판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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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원 기자I 2025.07.30 12:00:00

난민심사 회부 여부 관련 구체적 기준 첫 제시
가정폭력 피해 튀니지 여성 패소→대법 파기환송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대법원이 출입국항에서 난민신청자를 심사에 회부하지 않을 수 있는 요건에 대해 구체적인 법리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전 남편의 가정폭력을 피해 한국에 온 튀니지 국적 여성의 사건에서 ‘안전한 국가’와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의 판단 기준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 방인권 기자)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튀니지 국적 여성 A씨가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인정심사불회부결정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 판결을 깨고 이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1999년생 튀니지 국적 여성이다. 그는 2023년 8월 의료비자로 튀르키예에 입국해 체류하다가 같은 해 11월 19일 출국해 다음 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를 받았지만 입국목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입국재심실로 안내된 A씨는 4일 뒤 난민인정을 신청했다. A씨는 “튀니지에서 전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해 이혼했다”며 “이혼 후에도 계속해서 폭행과 협박을 당했는데도 튀니지 경찰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튀니지로 송환되면 박해당할 우려가 있다”고 호소했다.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A씨가 난민법 시행령 제5조 제1항 제4호(안전한 국가로부터 온 경우)와 제7호(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고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법무부 장관이 난민신청자를 난민인정 심사에 회부하지 않을 수 있는 경우와 관련해 난민법 시행령 제5조 제1항 제4호는 ‘박해의 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국가 출신이거나 안전한 국가로부터 온 경우’를, 제7호는 ‘그 밖에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난민인정을 받으려는 등 난민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를 각각 규정하고 있다.

1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원고가 주장하는 사유는 전 남편의 위협으로 원칙적으로 본국 국가기관에 보호를 요청해야 할 사유”라면서도 “튀니지에서 가정폭력에 대한 국가 보호가 실패하고 있다는 자료가 다수 제출됐다”고 봤다. 또한 튀르키예에 대해서도 “원고가 앞선 두 차례 체류기간 동안 사증 발급이 거부되거나 불법 체류기간이 길어져 본국으로 돌아갔다”며 “원고가 안전한 국가로부터 온 경우에 해당하는지 난민인정 심사과정에서 면밀하게 판단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반대로 2심은 A씨 패소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튀르키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난민 수용률을 보여주고 있다”며 “원고가 튀르키예에서 난민인정 신청을 했다면 부당하게 거부됐을 것이라고 속단할 수 없다”고 봤다. 또한 “원고가 주장하는 이혼한 전 남편의 지속적 괴롭힘은 튀니지 당국에 보호를 요청해야 할 문제”라며 “튀니지 당국이 여성폭력에 대응한다며 관련 법제를 정비하는 등 조치를 취해왔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원고가 경제적 이유로 대한민국에 온 것으로 보인다”는 근거를 들어 처분이 적법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같은 2심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는 난민법 시행령 제5조 제1항 제4호의 ‘안전한 국가로부터 온 경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며 파기환송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난민법 시행령 제5조 제1항 제4호와 제7호에 대해 각각 구체적인 해석 기준을 제시했다.

‘안전한 국가로부터 온 경우’(제4호)에 대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고 봤다. 난민신청자가 거쳐 온 국가에 재입국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국가에서 공정하고 실질적인 난민인정 심사를 받고 불복 기회가 부여되며 강제송환될 우려가 없어야 하며, 난민으로 인정될 경우 국제적 기준에 상응하는 지위와 처우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튀르키예 난민법에 따르면 난민 요건으로 박해받을 우려의 원인이 되는 사유가 유럽국가에서 발생한 경우로 제한된다”며 “유럽국가 외부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한 경우에는 조건부 난민으로서 제한된 지위만 부여된다”고 지적했다.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제7호)에 대해서는 “그 신청 내용 자체에서 법리상 받아들여질 수 없음이 외견상 명백하거나, 주요사실에 관한 주장 자체에 심각한 모순이 있거나 객관적 자료와 현저히 배치되는 등 이유 없음이 명백히 드러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튀니지가 2017년 여성폭력금지법을 제정했지만 이후에도 여성폭력에 대한 보호의 구조적 한계 등이 남아있다는 의견을 제기하는 자료가 존재한다”며 “원고가 당국으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기대할 수 있음이 명백하다고 인정하기 의문이다”라고 봤다.

그러면서 “원고의 주장에 심각한 모순이 있거나 믿을 수 없음이 드러난 객관적 자료를 찾기 어렵다”며 “사실관계를 정확히 조사해야 비로소 이유 없음이 밝혀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출입국항에서의 난민신청자를 심사에 회부하지 않을 수 있는 요건에 대해 대법원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첫 사례다. 대법원은 ‘안전한 국가’와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의 판단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며, 증명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행정청에 있다고 명확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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