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사우디 실종 언론인, 살해 후 토막”…트럼프는 사우디 옹호(종합)

방성훈 기자I 2018.10.17 16:01:42

CNN “살해 후 토막, 살해 순간 증거도 있어”
“암살 용의자 여권, 사우디 왕실 개입 암시”
트럼프, 사우디 왕세자와 통화 후 "아무것도 몰라"
美의회·국제사회, 對사우디 제재·진상규명 목소리 확대

지난 2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실종된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진=AFP PHOTO)
[이데일리 방성훈 정다슬 기자] 실종된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시신이 살해 후 토막났다고 CNN방송이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방송은 또 다수의 정황 근거를 토대로 사우디 왕실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의회를 비롯해 국제사회에선 사우디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를 두둔하고 나섰다.

◇CNN “사우디 언론인 토막살해…왕실 개입”

CNN은 세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 정보기관인 무캇바라(GIP)에 소속된 한 고위 관료가 카슈끄지를 심문·납치하기 위해 직접 팀을 꾸려 이스탄불에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CNN은 이 고위 관료가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측근으로 사우디 내부 깊숙한 상황까지 아는, 소위 ‘이너서클(inner circle)’에 속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CNN은 “사우디 왕세자가 직접 심문 혹은 납치를 승인했느지 여부는 불확실하다”면서도 “앞서 몇몇 미국 관료들은 ‘그런 식의 (암살) 작전이 왕세자가 직접 알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고 지적했다. 또 “터키가 공개한 용의자들의 여권 사본은 사우디 왕실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터키 정부는 지난 2일 이스탄불에 도착한 15명의 사우디 남성들이 카슈끄지 실종과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다. 터키는 이날 CNN에 카슈끄지 실종 당일 확보한 암살 용의자 7명에 대한 여권 사본을 제공했다. 이들 중 한 명은 사우디 내무부 법의학 책임자였으며, 또 다른 한 명은 사우디 왕세자와 함께 사우디 국영TV에 출연했던 측근 인사로 확인됐다. 앞서 터키 언론은 15명의 남성들 중엔 전직 빈 살만 왕세자 경호원도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카슈끄지는 지난해 9월부터 미국에 체류하면서 워싱턴포스트에 사우디 왕실과 정책을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해 왔다. 터키인 약혼녀와 결혼하기 위해 이스탄불을 찾았던 그는 지난 2일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가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다.

CNN은 터키 고위 관료를 인용해 “카슈끄지 시신이 살해당한 뒤 토막났다”며 “터키는 카슈끄지가 사우디 영사관 내에서 살해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청각 및 시각 증거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터키 수사당국이 전날 이스탄불 내 사우디 영사관을 9시간 동안 조사한 뒤 나온 발언이다. 소식통은 카슈끄지가 살해된 순간에 대한 증거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카슈끄지 토막살해설은 2주 전 뉴욕타임스 등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됐다. 터키 정부는 카슈끄지가 영사관에서 살해됐다면서도, 시신과 관련해선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터키 수사관들이 독극물 또는 유해물질에 대한 흔적 여부를 조사중”이라며 “최대한 빨리 납득할 만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우디 정부는 배후설을 부인하며 카슈끄지가 영사관을 나갔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관련해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약혼녀 하티제 젠기즈는 카슈끄지가 영사관으로 들어간 이후 다시 그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사우디 왕세자와 통화…아무것도 몰라”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를 옹호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빈 살만 왕세자와 통화를 가진 뒤 “빈 살만 사우디 아라비아 왕세자는 카슈끄지 암살 의혹과 관련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그는 “왕세자가 신속하고 완전한 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곧 조사결과가 나올 것”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의 통화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배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무죄 입증 전까지는 유죄’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사우디 정부의 유죄를 단정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사우디 왕실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사우디에 급파됐던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오전 리야드에 도착해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과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다. 그 역시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뤄졌다. 사우디 지도부는 영사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사우디 고위 지도자들과 고위 관리자들에게서 모든 사실을 확인하고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았다”고 트럼프 대통령과 입장을 같이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사우디에 이어 17일 터키를 방문해 당국자들과 사건 조사결과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사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캡처]
◇美의회 “사우디에 제재해야”…트럼프 “무기 팔아야”

미국 의회에선 대(對)사우디 제재를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화당 린지 그레미엄(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이날 폭스뉴스에서 사우디의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가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며 “그는 앞으로 세계 무대에서 절대로 지도자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민주당 다이앤 파인스타인(캘리포니아) 상원의원 역시 “영사관에서 일반인을 죽이는 정부는 강력하게 비난해야 한다”며 “미국은 살해는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사우디에 무기 수출을 하는 것 역시 금지해야 한다며 “우리는 예맨에서 사우디가 벌이는 전쟁을 (무기를 수출하는 식으로)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가장 큰 무기 수입국인 사우디에 대한 제재를 주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사우디로의 무기 판매는 미국 회사들에게 엄청난 주문이다”라며 “미국이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를 취소하는 것은 미국이 미국 스스로를 처벌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우디는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살 수 없게 되면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구입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 지도부는 까슈끄지 실종 및 암살 의혹에 대해 몰랐다는 쪽에 힘을 싣는 것은 무기 수출 금지 등 제재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가”라고 반문한 뒤 “그들(사우디)이 돈을 지불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개인의 이해관계 때문에 미국의 외교정책이 좌지우지되는 우려스런 상황에 놓였다”고 꼬집었다.

모하메드 빈 살만(왼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20일 미국 백악관 집무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AFP PHOTO)
◇국제사회, 진상규명 한목소리…사우디 주최 행사 불참 통보 이어져

국제사회는 한목소리로 사우디에 책임있는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영국, 미국 등 주요7개국(G7)과 유럽연합(EU) 외무장관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철저하고 투명한 조사를 촉구했다. 외무장관들은 “우리는 표현의 자유 수호와 자유언론 보호에 헌신할 것을 단언한다. 우리는 저명한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의 실종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카슈끄지 실종에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 사우디와 터키의 공동 조사를 고무적으로 평가하며, 이미 발표된 대로 사우디가 철저하고 신뢰할 만하며 투명하고 신속하게 조사를 진행할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성명은 사우디 왕실이 카슈끄지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 귀국 유도를 위한 심문 도중 잘못돼 사망한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 뒤에 나온 것이다. 국제사회는 사우디가 실무자 과실로 책임을 떠넘겨 사태를 매듭짓는 동시에, 왕실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른바 ‘꼬리 자르기’ 식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한다는 얘기다. 라보뱅크의 마이클 에브리 아시아금융시장연구소장은 “(미국과 사우디가) 서로 체면을 세워주면서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미 그 합의안은 윤곽이 나온 상태”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도 사우디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사우디가 주최하는 국제투자회의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일명 ‘사막의 다보스’ 참석자들이 줄줄이 불참을 선언한 것.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구(IMF) 총재는 이날 중동 방문 일정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그는 FII에서 연설할 예정이었다.

앞서 JP모건의 제임스 다이먼 최고경영자(CEO)와 포드 자동차의 빌 포드 회장, 우버의 다라 코스로샤히 CEO,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 거대 콘텐츠 회사인 비아콤의 밥 배키시 CEO, AOL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케이스, 김용 세계은행 총재 등도 불참을 통보했다. 이들 인사는 불참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카슈끄지 살해 의혹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CNN,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CNBC, 블룸버그 등 서방 주요 외신들도 사우디 측에 행사 불참을 통보했다.

사우디아리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에 의혹을 품은 시위자들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사우디 대사관 앞에서 항의하고 있다. (사진=AFP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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