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이는 지난달 27일 일본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 B홀에서 열린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스트리트 결선에서 180.85점으로 우승했다. 여러 기술을 이어서 선보이는 ‘런’에서 88.45점, 개별 기술을 겨루는 ‘트릭’에서 92.40점을 받았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은주원의 동메달을 넘어선 한국 스케이트보드의 아시안게임 최고 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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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까지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스케이트보드 종목은 45초 동안 코스를 누비는 ‘런’(Run)과 단일 고난도 기술을 선보이는 ‘트릭’(Trick) 점수를 각각 100점 만점으로 매긴 뒤, 합산한 총점 200점 만점으로 순위를 매긴다.
강준이는 런에서 1위로 올라섰지만, 트릭에서 두 차례 연속 실패했다. 마지막 시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메달권 밖으로 밀려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 시도에서도 그는 같은 기술을 택했다. 레일을 등지고 뛰어올라 몸을 270도 돌리고, 보드까지 회전시켜 레일에 걸치는 ‘널리 백사이드 270 힐 플립보드 슬라이드’였다. 참가 선수 중 나만 할 수 있는 필살기였고 마침내 성공했다.
끝까지 같은 기술을 고른 힘은 반복 훈련에서 나왔다. 강준이는 “대회 전 코치님과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기술을 성공시키기로 얘기했다”며 “정말 많은 시간을 바쳤기 때문에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새 기술을 구상하고 대회에서 쓸 정도로 익히는 데는 1년 반에서 2년이 걸린다고 했다. 발을 놓는 위치와 회전 각도를 정하고, 실패할 때마다 자세를 고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런 세심하고 끈질긴 노력이 아시안게임에서 결실을 맺었다.
아시아 정상에 오르기까지 훈련장을 찾아다니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8살 때 보드를 시작한 강준이는 경남 양산에 살았다. 전용 훈련시설이 없어 동네 공원 맨바닥에서 연습했다. 이후 강습을 해주던 형이 만든 연습장에서 탔지만, 실력이 늘면서 더 좋은 시설이 필요해졌다.
그때부터 강준이는 매주 금요일 새벽 첫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밤 10시까지 훈련한 뒤 막차로 양산에 돌아갔다. 이런 생활이 2년 반이나 이어졌다. 결국 부모님에게 서울로 이사하고 싶다 고 말했다. 고민 끝에 아버지는 양산에 남고, 어머니는 아들을 따라 생활 터전을 옮기기로 했다.
아들의 부상을 걱정한 어머니는 ‘보드를 그만두면 안 되겠느냐’고도 했다. 강준이는 울며 매달렸다. 그는 “보드 없는 삶은 꿈도 못 꿨다”며 “제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늘 원하는 것을 즐기며 살라며 아들을 믿어줬다.
크고 작은 부상도 끊이지 않았다. 골절도 다반사다. 무릎뼈를 다쳐 6개월간 보드를 타지 못했을 때는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최근에는 오른쪽 손목이 부러졌다. 금메달을 안긴 기술을 연습하다 레일에 부딪쳐 심하게 멍이 든 적도 있다. 그래도 다시 보드를 포기할 수 없었다. 어려운 기술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부모님은 아시안게임 결선을 앞두고도 결과보다 아들의 마음을 먼저 챙겼다. ‘준비한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해도 끝이 아니니 다음 대회에서 잘하면 된다’고 격려했다. 강준이는 “경기 전에는 너무 긴장해 말이 잘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힘이 났다”고 그 순간을 기억했다.
금메달을 확정한 뒤에는 관중석의 어머니를 보며 “엄마”를 외쳤다. 귀국한 날 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하는 김치찜을 해줬다. 아버지에게는 조금 미안했다. 강준이는 “티를 안 내려고 하시는데 살짝 서운한 기색이 보였다”며 “앞으로는 아버지 얘기도 자주 꺼내겠다”고 말했다.
세계 무대에서 성과는 이미 쌓이고 있다. 강준이는 2024년 세계적인 아마추어 대회인 ‘탬파암’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우승했다. 올해는 미국 LA에서 열린 스트리트리그 스케이트보딩(SLS) 데뷔전에서 정상에 올랐다. 2023년까지는 거의 자비로 대회나 전지훈련을 소화했다. 하지만 지금은 레드불을 비롯한 후원사들의 지원 덕분에 해외 대회 참가 비용 부담을 덜어줬다.
다음 목표는 올림픽이다. 강준이는 이미 새 기술 구상을 마쳤다.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올림픽에서 성공시켜 보여드리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미국은 국제무대 데뷔와 주요 대회 우승의 긍정적인 추억이 있는 곳이다. 그는 “좋은 기억이 많아 다른 나라보다 긴장이 덜 된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가끔씩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다만 메달만 바라보지는 않겠다고 했다. 강준이는 “제가 할 것을 하면 결과는 따라온다고 생각한다”며 “나만의 스케이트보딩을 하는 게 가장 큰 목표다”고 강조했다.
선수 생활 이후의 꿈도 그려놨다. 강준이는 “평생 보드를 타고 싶지만 몸 관리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며 “최소한 마흔 살까지는 계속 타고 싶다”고 말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제품을 선보이는 바람도 있다. 그는 “나이키 같은 큰 브랜드와 협업해 제 이름으로 된 제품을 출시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장에서 쌓은 이름을 스케이트보드 문화 속에 오래 남기겠다는 것이 17살 소년이 그리는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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