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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의 항행 규칙은 ‘바다의 헌법’으로 불리는 유엔 해양법협약(UNCLOS)이 정한다. 지난 4월 말 기준 170개가 넘는 나라·지역이 이 협약에 가입해 있다. 협약은 연안국의 영해를 지날 땐 원칙적으로 ‘무해통항권’만 인정한다. 연안국의 안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지나갈 수 있고, 연안국 판단에 따라 배를 세울 수도 있는 권리다.
반면 국제해협에는 ‘통과통항권’이 적용된다. ‘계속적이고 신속한 통과’라면 군함을 포함한 모든 배가 지날 수 있다. 연안국의 영해라도 물류 요충지여서 국제 항행에 쓰이는 해협이 국제해협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란이 해양법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채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해협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지브롤터 해협, 동남아시아의 말라카 해협처럼 대부분의 요충지 해협은 국제해협이라는 해석이 굳어져 있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은 요충지이면서도 국제해협 여부가 논쟁거리가 되는 드문 사례라고 닛케이는 설명했다.
일본이 그동안 명확한 입장을 유보해 온 것도 이런 논란과 맞닿아 있다. 국제법은 국내법과 달리 어겨도 처벌 규정이 없어, 효력을 가지려면 여러 나라의 실제 행동과 ‘그것이 의무’라는 공통 인식이 쌓여야 한다. 일본은 각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국제해협으로 다뤄 온 이른바 ‘국가실행의 축적’이 충분치 않다고 봤다.
실제로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헌법 해석 변경 논의가 있었던 2014년 5월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당시 이시이 마사후미 외무성 국제법국장은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며 “충분한 국가실행의 축적이 없어 불확실한 면이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입장을 바꾼 배경엔 최근의 중동 정세가 있다. 지난 2월 말 미국 등의 이란 공격 이후 이란이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이 혼란에 빠졌다. 일본 정부는 이를 계기로 물밑에서 협의를 진행해 해석을 변경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지난 5월 13일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국제법상 통과통항 제도가 적용되는 국제해협에 해당한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판단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동안 부족하다고 봤던 ‘국가실행의 축적’이 채워졌다는 것이다. 모테기 외무상은 “국제 공공재로서 세계 물류 요충지로 실제 국제 항행에 쓰이는 해협이며, 달리 편리한 대체 항로가 없다”고 지적했다. 해양법협약은 1982년 채택돼 1994년 발효됐는데, 호르무즈 해협은 그 뒤로 줄곧 요충지로 기능해 왔고 이번 사실상의 봉쇄로 그 사실이 분명해졌다.
다른 하나는 지난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다. 안보리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해 “합법적인 통과통항 또는 항행의 자유가 인정돼야 한다”고 촉구했고, 이런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일본의 판단을 뒷받침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국제해협으로 명확히 하면서 일본은 전후 처리 과정에서 국제법에 근거한 주장을 펴기 쉬워졌다고 닛케이는 강조했다. 예컨대 이란이 주장하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료 징수에 대해 통과통항권 확보를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내기 수월해진다. 일본 외무성은 “당장 일본의 주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법적 입장을 분명히 한 만큼 대외적으로 더 명확하게 발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가 주도해 호르무즈 해협 안정 확보에 관한 공동성명을 냈을 때,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곧바로 동참 의사를 밝힌 것도 궤를 같이 한다. 미국과 이란의 합의 이행에도 일본이 주체적으로 관여할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국제법을 전공하는 나카타니 가즈히로 도쿄대 명예교수는 “호르무즈 해협이 국제해협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해석”이라며 “이번에 일본이 큰 영향을 받은 것을 계기로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특히 서방 국가들과의 단결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외교적으로 플러스가 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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