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에 '0.5%' 금리 올린 일본의 자신감…상반기 또 올리나

양지윤 기자I 2025.01.24 16:41:19

올해 인플레 전망도 공격적으로 높여
물가상승률 2% 유지에 트럼프 불확실성 해소
“올해 최종 금리 0.75%”
대규모 ‘엔 캐리 청산’ 가능성은 낮아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일본은행이 기준금리 정상화를 향한 발걸음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 예상대로 단기 정책금리를 0.25%포인트(p) 인상하면서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지난해 3월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한 데 이어 같은해 7월 0.25%로 금리를 올린지 6개월 만에 다시 금리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올해도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이 예상되는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시장 변동성도 제한적이라는 판단에 따라 금리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선 경제와 물가 상황에 따라 연내 한 차례 더 금리인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AFP)
◇정책위원 9명 중 8명 ‘찬성’…올해 인플레 전망도 공격적으로 높여

일본은행은 24일 이틀간의 통화정책 결정회의를 마치고 기준금리인 단기 정책금리를 현재 0.25%에서 0.5%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정책위원 9명 중 1명을 제외한 8명이 금리인상에 찬성했다.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지난해 7월 회의 이후 6개월 만이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3월 단기 정책금리를 17년 만에 올리며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했고, 작년 7월 금리를 0∼0.1%에서 0.25%로 올렸다. 기준금리를 0.5%로 올린 것은 리먼브라더스 사태 직후인 2008년 10월 이후 17년 만이다. 일본에선 1995년 9월 이후 기준금리가 0.5%를 넘은 적이 없다.

일본은행의 금리인상 배경은 2% 전후로 유지되는 물가 상승률이다. 1990년대 거품 경제 붕괴 후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으로 꿈쩍도 하지 않던 일본의 물가가 현재는 지속적으로 2%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날 일본 총무성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는 전년에 견줘 2.5% 올랐다. 2023년 3.1%보다는 낮아졌지만 3년 연속 2% 이상 상승세를 보였다. 또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보다 3% 올랐다. 월간 기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를 기록한 것은 1년 4개월 만이다.

일본 산업계 전반에 확산 중인 ‘임금 인상’ 기조도 주된 이유다. 일본은행은 각 지점의 보고와 경제단체 조사 등을 토대로 올해 춘계 노사교섭(춘투)에서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폭넓은 업종에서 높은 수준의 임금인상이 지속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본 근로자 실질임금도 4개월 만에 오름세로 전환했다. 이날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11월 근로자 실질임금이 전년 동월 대비 0.5% 올랐다는 수정치를 발표했다.

일본 기준금리 추이(그래픽=김일환 기자)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된 점도 금리 인상의 배경이다. 지난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발언과 정책에 따라 시장 변동이 심해지면 금리 인상을 보류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까지 일본 국내외 주식과 환율 변동에 별다른 혼란이 없어 금리를 인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분석이다.

일본은행은 3개월마다 새로 내놓는 ‘경제·물가 정세 전망’ 보고서도 이날 발표했다. 일본은행은 2024년도(2024년 4월∼2025년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신선식품 제외 기준) 전망치를 2.7%로, 지난해 10월 전망치보다 0.2%포인트 올렸다. 2025년도(2025년 4월∼2026년 3월)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은 2.4%로, 기존보다 0.5%포인트 상향했고, 2026년도(2026년 4월∼2027년 3월)도는 0.1%포인트 올린 2.0%로 제시했다. 일본은행이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을 공격적으로 올린 것을 두고 추가 금리인상에 대한 자신감을 시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도 금리인상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가즈오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통화정책 기조에 대해 “전망보고서에서 제시된 경제활동과 물가에 대한 전망이 실현되면 그에 따라 정책금리를 인상하고 금융완화 정도를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물가 전망과 금리인상 속도 지연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올해 중반쯤 (물가 전망이) 상향 조정된 후 안정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현재로서는 심각한 뒷걸음질 상황은 보이지 않는다”고 시장을 안심시켰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사진=AFP)
◇“올해 최종 금리 0.75%”…대규모 ‘엔 캐리 청산’ 가능성은 낮아

시장에서도 일본은행이 연내 추가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0.5%로 정책금리를 높인 뒤 달러화 대비 엔화 가치가 추가로 더 떨어지지 않고, 물가 상승률이 2%대로 유지하면 6개월 정도에 한번씩 점진적인 속도로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환경이 지속하면 올해 최종 정책금리가 0.75%에 도달하고, 내년에 한 차례 더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나미 타케시 노린추킨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행이 너무 빨리 금리를 올리면 엔화가 급등하고 수입 가격이 하락해 2%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진다”며 “반면 엔화가 계속 약세를 보인다면 정치적으로 수입 가격 상승은 민생에 압박을 가할 것이고, 이는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하기 더 쉬워지게 만들 것”이라고 짚었다.

이번 결정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날 달러·엔화 환율은 큰 폭으로 움직였다. 정책금리 발표 전 달러당 156엔선이던 환율은 금리 인상 발표 직후 156.4엔까지 튀어올랐으나 이후 155엔선으로 하락했다(엔화가치 상승). 이날 오후 4시9분 기준 달러·엔 환율은 1.13엔(0.72%) 내린 155.47 ~155.50엔 사이에서 거래됐다. 일본은행이 금리인상 기조를 지속하며 미국과의 금리격차가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에 엔화 매수, 달러화 매도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2년물 국채 금리가 한 때 0.715%까지 상승하며 2008년 10월 이후 약 17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닛케이 평균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26.89엔(0.07%) 내린 3만9931.98엔으로 마감, 5거래일 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

이번 금리 인상은 시장의 예측이 선반영 되면서 지난해 8월 국내 증시에 ‘블랙먼데이 사태’를 일으켰던 ‘엔 캐리 트레이드’(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려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것) 청산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에다 가즈오 일은 총재가 지난 14일, 히미노 로조 부총재가 15일에 각각 1월에 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금리 방향성을 언급한 데다, 지난해 위험자산에 들어가 있던 엔 캐리 트레이드가 지난해 상당 부분 청산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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