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호 전 금융정보분석원 원장은 최근 이데일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며 경제정책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증세를 통해 사회 안전망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시장경제 원칙을 되살려 경제의 활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대주주 가족 중심의 비정상적인 기업 지배구조도 정상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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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전 원장은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진 근본적인 원인은 시장경제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사회적 약자를 경제 규제를 통해 보호하려다 보니 과도한 규제가 생겼고, 노동시장 역시 경직돼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경제정책의 근본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사회적 약자 보호는 중요한 과제지만, 이를 경제정책이나 제도로 해결해선 안 된다”며 “약자 보호는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경제정책이나 제도는 시장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 전 원장은 사회 안전망을 재설계하는 바탕에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도입해야 한다고 봤다. 부의 소득세는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한 개념으로, 소득이 없는 계층에게 일정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소득 증가에 따라 지급액을 점차 줄이는 선별 복지 모형이다. 이른바 ‘부자에게 세금을, 빈자에겐 소득을’이라는 표현으로 설명된다.
그는 “부의 소득세는 기존 복지 시스템보다 행정 비용을 줄이면서 더욱 효과적인 소득 재분배를 실현하는 방안으로, 사회 안전망 재설계의 근간이 돼야 한다”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부터 노인 기초연금, 근로장려금 등 현재 시행되는 여러 지원금 제도를 모두 ‘부의 소득세’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속 가능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선 증세 역시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들의 평균 부가가치세 세율 19.2%와 비교하면 한국의 부가가치세율은 10%에 그친다는 점에서 부가가치세를 올리는 게 적합하다”며 “세금을 더 걷지 않고 저성장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다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또 변 전 원장은 부의 소득세를 도입한 이후엔 사회 안전망의 하나로 꼽히는 국민연금에서 소득 재분배 기능을 떼어내 장기 저축 제도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국민연금의 최소 연 수익률 4%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개혁하면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린다고 하더라도 가입자들에겐 현재의 퇴직연금보다 좋은 장기 저축 상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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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전 원장은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경제 전반의 자유화가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는 “미국은 물론, 중국 기업들도 자유롭게 활동하는데, 한국 기업들은 규제 때문에 혁신이 막혀 있다”며 “경제적 자유도를 높여 기업들이 창의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 전 원장은 중국의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 개발도 언급하며 “한국에서도 딥시크가 나오기를 바라면서 주 52시간제와 같은 규제를 시행하면 해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반도체 업종에서만 예외적으로 규제를 완화할 것이 아니라 전 산업에 걸쳐 근로시간제도·노동시장 유연화 등 경제 자유화를 추진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대주주 가족 중심의 기업 지배구조 개편도 필요하다는 말도 꺼냈다. 그는 “대기업들이 계속해서 세습 경영을 고수하면서 경제 효율성을 저해하고 있다”며 “기업 지배구조를 바꿔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들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 전 원장은 한국 경제가 제대로 된 성장 사이클에 올라서기 위해선 앞서 말한 △부의 소득세 도입 등에 따른 사회 안전망 재구축 △부가가치세율 인상 등 증세 △경제 전반의 자유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봤다. 그는 “이 중 하나만 이뤄지는 것은 의미가 없고, 패키지 형태로 종합적인 개혁이 돼야만 한국이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개혁, 더는 미룰 수 없어…사회적 합의 필요”
아울러 변 전 원장은 더는 개혁을 미뤄선 안 된다며 여야 정치권이 양보하고 국민에게 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구할 필요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어떠한 경제정책도 성공하지 못한 채 한국은 내리막길만 걷게 될 수 있다”며 “현재 시스템을 유지한 채 미봉책을 반복하는 방식으로는 성장 동력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회 안전망을 재구축하고 경제 자유화를 추진해 한국 경제를 되살리겠다고 국민을 설득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모든 개혁엔 반발이 따르겠지만, 정부가 1년 정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공론화를 거쳐 강력히 개혁 패키지를 추진하면 출중한 국민 능력의 힘을 받아 한국 경제는 다시 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양호 전 원장은…
△1954년 제주 △서울 경기고 △서울대 무역학과 △미국 노던일리노이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박사 △1977년 제19회 행정고시 수석 △1990~1992년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2001~2004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국장 △2004~2005년 금융정보분석원 원장 △2005년 보고펀드 공동대표 및 고문 △2025년 현재 VIG파트너스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