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살겠다, 억만장자들이 돈 내라"…프랑스 '부유세' 논의 재부상

정다슬 기자I 2025.09.23 16:05:51

“공공지출 삭감 전, 부유층 먼저”…프랑스서 부유세 논의 급부상
순자산 1643억원 이상 초부유층에게 2% 세금 부과하자
경제학자 주크만 제안에 좌우 상관없이 공감대 높아
"공공지출 삭감하려면 공평해야"

프랑스 시위대가 18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전국적인 파업과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파업과 시위는 프랑스 국가 예산을 둘러싸고 노조들이 촉발한 것이다.(사진=AFP)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정치적·재정적 혼란에 빠진 프랑스에서 ‘부유세’ 재도입 논의가 거세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친기업 정책을 앞세워 2017년 폐지했던 제도가 다시 사회적 요구로 힘을 얻는 모습이다.

논란의 중심에는 미국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의 경제 자문을 맡았던 프랑스 출신 경제학자 가브리엘 주크만(Gabriel Zucman·사진)이 있다. 그는 순자산 1억 유로(약 1643억원) 이상인 초부유층에게 2%의 세금을 부과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가브리엘 주크만(사진=AFP)
그동안 마크롱 대통령과 중도우파 동맹은 오랫동안 부유세를 프랑스 사회주의의 유물이라며 일축했다. 그러나 마크롱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복지제도 축소 등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그는 이번 제안을 ‘재정 정의(fiscal justice)’의 문제로 규정하며 프랑스의 억만장자와 초부유층에게 기여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가 440억유로의 공공지출 삭감을 담은 예산안 통과를 주장하다 결국 물러난 상황에서 주크만은 이제야말로 프랑스 부유층이 주머니를 열 차례라고 강조한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억만장자들이 이렇게 적은 세금을 내는 동안에는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며 이를 통해 연간 200억 유로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랑스의 부유층이 근로소득자들보다 소득 대비 훨씬 적은 세금을 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는 노동소득에 대해 배당이나 자산에서 발생한 소득보다 더 높은 세율을 매기는 경향이 있다. 파리 공공정책연구소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상위 0.0002%는 실효세율이 26%에 불과한 반면, 상위 0.1% 가구는 46%를 부담한다.

프랑스 재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경제에 치명적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업가치는 높게 평가받지만 실제 매출은 제한적인 프랑스 기술산업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분출된다.

그러나 최근 이포츠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가 부유세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특히 마크롱 지지층의 92%, 극우 성향 마린 르펜 지지층의 75%가 동의해 이례적인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부유세 재도입 요구는 시위 현장에서도 확인된다. 지난주 전국에서 50만 명이 모인 시위대는 “주크만 세금 찬성, 억만장자들은 세금을 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프랑수아 빌르루아 드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편법·합법적 절세 수단을 제한하고, 원래 의도대로 세금을 더 내도록 하는 조치가 정당화될 수 있다”며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받아들여지려면 공정하다고 느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부유세에 비판적이었던 마크롱 정부도 기류변화를 보이고 있다. 예산안 통과를 위해서는 사회당 지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누 신임 총리는 최근 한 프랑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자리와 경제 성장을 만드는 ‘업무 관련 자산’은 신중히 다뤄야 한다”면서도 “재정 정의와 부담 분담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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