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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 덮치는 시한폭탄" vs "도시 허파"…애물단지된 플라타너스

양지윤 기자I 2021.07.29 17:18:55

영등포 시장·로터리 일대 40년 이상된 나무 제거에 주민 반발
플라타너스 공해에 강하지만 벌레 잘 꼬이고 오래되면 잘 썩어
여름철 강풍 동반 태풍에 취약, 보행자 안전 사고 우려
영등포구 "안전한 플라타너스 존치…조팝·은행나무로 보행 친화 거리 조성"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40년 된 나무들을 하루 아침에 모두 베어버리다니 구청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요.”

서울 영등포구가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영중로와 영등포구로 일대 플라타너스 가로수 150여그루를 제거했다. 수령 40년 이상인 플라타너스를 베어내자 속이 썩어 텅 비어있다.(사진=영등포구 제공)
서울 영등포구가 영중로와 영등포로 일대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가로수 150여그루를 베어낸 것을 두고 일부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도심의 허파 기능을 하는 가로수 제거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비롯해 폭염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나무 그늘을 없앤 데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다. 서울시와 영등포구는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썩어 있는 만큼 보행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종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29일 서울시와 영등포구에 따르면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영등포시장과 영등포로터리 인근 영중로, 영등포로 일대 900m 구간의 가로수 162그루 가운데 양버즘나무 151그루를 베어냈다.

양버즘나무가 가로수에서 밀려난 이유는 안전 사고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양버즘나무는 토심이 깊고 배수가 양호한 사질양토(산성토양)를 좋아하며 각종 공해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충해에는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국내에서는 1970~1980년대 경제성장이 급속도로 이뤄지던 시기 빨리 자라고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특성으로 인해 가로수로 많이 심어졌다. 하지만 벌레가 잘 꼬이고, 줄기 내부에 생기는 동공 때문에 수종이 40년 이상된 양버즘나무는 안쪽이 썩어있는 경우가 많다. 또 뿌리가 옆으로 퍼져 자라는 특성까지 있어 여름철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 몰아치면 보행로나 차도로 쓰러지는 단골 수종으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 2019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링링으로 서울지역에서 쓰러진 가로수 195그루 가운데 양버즘나무가 86그루(44%)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가지가 부러진 양버즘나무도 91그루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세계적인 보행자 거리로 통하는 프랑스 파리 상젤리제의 가로수가 양버즘나무로 조성된 점과 비교하며 행정 편의주의적 접근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국내 기후 여건 등을 고려해 안전사고 우려가 큰 양버즘나무 위주로 제거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양버즘나무는 태풍에 가장 취약한 나무이다보니 안전사고 위험요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다만 겉과 속이 모두 멀쩡한 나무의 경우 최대한 존치하는 방향으로 가로수 변경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수령 40~50년이면서 속이 썩은 양버즘나무를 선별적으로 제거하게 된 것”이라며 “나무를 벤 자리에는 조팝나무와 은행나무를 식재해 안전한 보행 친화거리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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