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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찾은 속초중앙시장에는 평일임에도 문을 닫은 점포가 눈에 띄었다. 이 시장은 속초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평소에는 항상 사람이 북적이는 곳 중 하나다. 시장 내 정육점에서 일하는 남모(37)씨는 “어제 속초 사람들 거의 인근에 불이 옮겨붙을까봐 불안해서 새벽 5시까지 깨 있었다”며 “상인들도, 주민들도, 관광객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느라 시장에 안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남씨는 “나야 장사를 해야 하니 나왔지만 시장에 장을 보러 온 주민 수가 오늘따라 많이 적어 심란하다”고 토로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음식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평소라면 붐볐을 금요일 오후였지만 시장의 강정 골목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김인학(61)씨는 “금요일 오후 4시 정도면 골목에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지나가는 사람이 많은데 평일 절반 수준도 안 된다”며 “매출도 절반 이상 줄어든 거 같고 매출 타격이 크다. 속초는 인기 관광지였는데 앞으로 관광객이 찾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속초중앙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점포 중 하나인 만석닭강정 앞에서도 평소와 같은 긴 대기줄을 볼 수 없었다. 직원인 이모씨는 “금요일에는 대기줄이 미어터지고 오래 기다리지 않으면 닭강정을 사 가기 힘들다”라며 “근데 오늘은 손님들이 줄 선 걸 본 적이 없다. 큰불 소식에 다들 겁을 먹고 안 나오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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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전·농기계·가축 불타…주민들 “정부가 지원책 마련해야”
같은 날 오후 찾아간 고성군 용촌 1리 곳곳에는 불씨가 남아 있었다. 광주광역시·경기도·경북 등 각지에서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잔불을 진압하는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유정순(63)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번 화재로 유씨는 삶의 터전이던 건축자재 매장과 집을 한순간에 잃었다. 유씨는 “간밤에 갑자기 산에서 불씨가 날아와 집을 덮쳤다. 5분 만에 불이 번져 몸만 챙겨 나올 수밖에 없었다”며 “건축자재만 해도 30억원대쯤 될 텐데 화재보험이 없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차 안에서 밤을 보냈는데 당장 잘 곳이 없어 급하게 방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어떻게든 보상을 잘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동해 망상해수욕장에서 민박촌을 운영하는 김모(60)씨는 갖고 있던 숙소 10여채 중 절반가량이 타 버렸다고 가슴을 쳤다. 김씨는 “간밤에 이불 한 장 못 챙기고 대피해 자세하게 살피지 못했는데 오늘 보니 집뿐만 아니라 민박까지 대부분 날아갔다”며 “헐고 다시 지어야 하는데 그러면 적어도 수달 간은 운영하지 못할 것 아니냐”라고 토로했다.
용촌 1리 주민 이헌실(63)씨는 애지중지 키우던 가축을 잃었다. 소 여섯 마리 가운데 두 마리가 불에 타 죽었다. 남은 소들마저도 털이 그을리고 연기를 마셔 상태가 좋지 않다. 이씨는 “그나마 사람이 안 다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다”라며 “우리는 축사만 타버렸는데 뒷집은 집이 다 잿더미가 됐다”고 혀를 찼다.
농번기를 앞둔 농민들도 “막막하다”고 입을 모았다. 고성과 속초 등지에서는 그을린 논바닥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수숙(75)씨는 “이앙기 등 농기계를 보관하던 비닐하우스와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가 홀랑 불에 타 버렸다”며 “앞으로 모도 심어야 하고 농사를 본격적으로 지어야 하는데 농기계가 없으니 굶어야 하나 싶다”고 한탄했다. 이씨는 “농기계는 보험도 없다. 어쩔 수 없는 산불에 생계수단이 타버리는 피해를 입은 것”이라며 “정부가 마땅한 지원책 등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4일 강원도 고성·속초, 강릉, 인제 등에서 발생한 산불로 역대급 피해가 발생했다. 해마다 4~5월 강원과 동해안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양강지풍(襄江之風)’ 때문에 피해가 커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이 화재로 인해 임야 약 525ha, 주택 135채, 창고 7채, 비닐하우스 9동, 부속건물 20여 동, 오토캠핑리조트 46동, 동해휴게소 1동, 컨테이너 1동, 건물 98동이 소실되는 피해가 난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