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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면담은 이날 예정된 시간보다 약 30분 늦은 오후 4시54분부터 6시15분까지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진행됐다. 한 대표가 지난 9월24일 대통령-당 지도부 만찬을 앞두고 최초 독대를 요구한 지 한 달 만에 성사된 만남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개별면담은 전당대회 직후인 7월30일 이후 83일 만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10여분 산책 후 파인그라스 내부로 이동, 정진석 비서실장이 동석한 가운데 본격적으로 면담을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대표는 제로콜라를 마셨다. 윤 대통령은 직접 한 대표를 위해 제로콜라를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윤 대통령은 당초 4시30분으로 예정된 면담이 지연된 데 대해 데이비드 라미 영국 외교장관과의 접견 및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전화통화 일정 때문이었다고 한 대표에 직접 설명했다.
면담 후 브리핑을 실시한 박정하 당대표 비서실장은 “한 대표는 오늘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나빠지고 있는 민심과 여론 상황 이에 따른 과감한 변화와 쇄신의 필요성을 전했다”며 “두번째는 김여사 이슈 해소와 관련해 앞서 밝힌 세가지 방안, 즉 대통령실 인적쇄신과 대외활동 중단, 의혹 상황 설명 및 해소 그리고 특별 감찰관 임명의 필요성 등을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김 여사와 관련한 3대 요구는 한 대표가 10·16재보궐 선거 기간 계속 강조해왔던 부분이다.
아울러 한 대표는 여야의정 협의체 조속한 출범을 강조하고, 정부의 개혁정책 및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당이 적극 지원할 것을 전했다고 박 비서실장은 설명했다. 아울러 박 비서실장은 “한 대표는 ‘개혁의 추진 동력을 위해서라도 부담되는 이슈들을 선제적으로 해결할 필요성이 있다’고도 대통령께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결국 김 여사 이슈 등을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여야의정 등 다른 개혁도 추진력을 얻을 수 없다고 에둘러 지적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의 요구를 경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이날 자신이 전달할 내용을 정리한 빨간색 서류 파일을 준비해 상 위에 올려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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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관심을 모았던 면담이 특별한 결론 없이 마무리되면서 향후에도 당정갈등이 해소되기는 다소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면담이 자연스럽게 만찬으로 이어지면서 화해무드가 조성될 것이라는 예측도 모두 빗나갔다. 한 대표가 면담 직후 국회에서 직접 브리핑을 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으나, 면담 종료 직후 곧장 귀가했다.
면담 전 열린 여당 중진의원 간담회도 윤-한 갈등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여당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추경호 원내대표 주재로 4선 이상 중진의원 15명이 모인 가운데 비공개 간담회를 개최했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추 원내대표를 포함 권성동·권영세·김기현·박대출 등 중진의원이 참석, 면담 전 대통령실에 힘을 싣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간담회에 참석한 중진들은 “당과 정부가 합심해 앞으로 여당으로서 (국정을)잘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당정합심을 강조한 만큼 ‘김여사 때리기’를 통해 대통령실과 차별화하려는 한 대표를 저격했다는 해석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통상 만찬이 빠진 차담으로만 대화를 마쳤다면 실무적인 이야기만 하고 끝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30분 가까이 면담이 늦어졌고 만찬도 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의 대화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전반적인 흐름을 봐서는 윤-한 모두 독자노선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형식적인 면에서 대통령실이 한 대표를 배려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내용면에서도 크게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최수영 시사평론가는 “양측 모두 독자노선으로 가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대통령은 특검을 우려하는 상황이고, 한 대표는 리더십을 우려하는 상황”이라며 “선을 긋는 행보라든가 판이 깨지는 행보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