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바로 세운다"는 법왜곡죄, 오히려 법을 흔드나[현장에서]

성주원 기자I 2025.12.02 14:17:08

여론조사 80% 찬성 VS "헌법원칙 훼손" 경고
내란재판 불신 배경…추상적 구성요건 악용 우려
법조계 "사법 독립 약화…기존 제도 개선이 해법"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판사님, 그 판결은 법을 왜곡한 겁니다. 고소하겠습니다.”

만약 법왜곡죄가 시행된다면 법정에서 이런 말이 오갈 수 있다. 불리한 판결을 받은 피고인이나 검사가, 법관을 형사 고소하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지난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법왜곡죄는 ‘사실을 조작하거나 법을 왜곡해 판결·처분을 내린 판·검사를 처벌한다’는 취지지만 그 이면에는 사법 독립이라는 헌법 원칙을 뿌리째 흔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진=챗GPT 달리
여론은 찬성, 법조계는 일제히 경고

법왜곡죄 도입에 대한 국민 여론은 압도적으로 ‘찬성’이 많다.

여론조사기관 ‘여론조사꽃’이 지난 10월 31일~11월 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전화면접조사(CATI) 응답자의 81.6%가 찬성했고 자동응답조사(ARS)에서도 72.4%가 찬성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12·3 비상계엄 이후 진행 중인 내란 재판에 대한 불신, 그리고 과거 불공정하다고 느껴진 재판들에 대한 분노가 쌓여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법조계 반응은 정반대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 10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법왜곡죄는 재판과 관련한 불법 행위를 범한 법관을 처벌 대상으로 삼기에 사법부의 독립을 약화시킬 수 있고 권력이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도 있다”며 반대입장을 밝혔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지난 2019년 법왜곡죄 관련 연구보고서에서 “권력에 부역한 사법 관료를 단죄하기보다는 권력이 사법부를 장악·조종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왜곡죄, 어떻게 작동하나

구체적 상황을 그려보면 법왜곡죄의 위험성을 이해할 수 있다.

법왜곡죄는 획기적 판결을 ‘법 왜곡’으로 만들 수 있다. 2018년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한다’는 새로운 판단이었다. 당시로선 획기적 판결이었지만 일각에서는 “외교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법 왜곡”이라는 비판도 나왔었다.

만약 그때 법왜곡죄가 있었다면 판결에 불만을 가진 쪽이 대법관들을 형사고소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법왜곡죄가 존재한다면 법관들은 새로운 법리를 시도하기보다 ‘나중에 고소당하지 않을 안전한 판결’을 택하게 될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훗날 2035년 여당이 ‘과거 정권 봐주기 판결’을 문제 삼아 법관을 고소한다. 2040년 정권이 바뀌자 이번엔 야당이 ‘현 정권 편향 판결’을 문제 삼아 고소한다. 극단적인 가정 상황이지만 법관들이 법리가 아니라 정치 지형을 읽으며 재판하게 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배형원(왼쪽)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 국회(정기회) 법제사법위원회 제8차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진수 법무부 차관. (사진=뉴스1)
“무엇이 왜곡인지 누가 정하나”

법왜곡죄의 가장 큰 문제는 ‘왜곡’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형사처벌 조항은 경계선이 명확해야 하지만 ‘법을 왜곡했다’는 판단은 본질적으로 해석의 영역이다.

축구 경기에 비유하면 심판이 오프사이드를 판정한 후 이에 불만을 제기한 팀에서 영상판독(VAR)으로 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패배한 팀은 “저 심판이 규칙을 왜곡했다”며 심판을 형사고소할 것이다. 다음 경기부터 심판들은 호각을 불기 전에 “내가 고소당하지는 않을까”를 먼저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재판도 마찬가지다. 증거를 어떻게 평가할지, 법조문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법관의 고유 권한이다. 상급심에서 판결이 뒤집히는 것 자체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방증이다. 이런 해석의 차이를 형사처벌로 다루기 시작하면, 법관 독립이라는 헌법 원칙은 무너진다.

법왜곡죄 추진 배경에는 깊은 사법 불신이 있다. 사법계에 대한 불신을 잘못이라고 말할 순 없다. 사법부의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도 타당하다. 문제는 ‘어떻게’다.

현행법에도 법관을 견제할 수단은 이미 존재한다. 탄핵, 징계, 손해배상, 직권남용죄 등이 있다. 2017년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당시에도 이 제도들이 작동했다. 진짜 문제는 제도 부재가 아니라, 제도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 것이다. 더 강한 처분이나 형벌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 제도를 촘촘하게 운영하고 법관 인사와 평가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분노가 정당하더라도 해법이 위험하다”

“판사도 잘못하면 처벌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새겨들을 만 하다. 하지만 그 정당한 분노를, 헌법 원칙을 훼손하는 조항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법왜곡죄는 표면적으로는 ‘나쁜 판사 처벌’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판사에게 보내는 위협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새로운 형벌 조항보다는 사법부의 책임성과 독립성을 함께 높일 수 있는 정교한 제도 설계를 우선해야 한다.

“법을 바로 세운다”는 명분으로 법의 기둥을 흔든다면, 어떻게 포장해도 좋은 선례가 될 수 없다. 법왜곡죄는 지금 추진 방식대로라면, 법을 흔드는 역설적 입법이 될 수 있다. 국회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김용민 소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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