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올 겨울을 제대로 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카 린틸라 핀란드 경제부 장관은 “에너지 부문에서 리먼 브러더스 위기가 촉발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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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도 못 난다…EU, 9일 에너지장관 긴급회의
유럽연합(EU)은 러시아가 가스 공급 전면 중단을 밝힌 다음날인 지난 3일 “대응할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지적이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너지 컨설팅기업 에너지 애스펙츠의 레온 이즈비키는 올해 9월부터 내년 10월 말까지 EU가 목표로 설정한 가스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천연가스 가격이 메가와트시(MWh)당 평균 400유로(약 54만원)에 달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일 유럽 천연가스 가격의 벤치마크인 네덜란드 TTF 선물 가격은 ㎿h당 214유로(약 29만원)대에 마감했다.
오로라 에너지 리서치의 제이콥 만델은 “현재로선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다른 국가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으로 대체할 여지가 많지만 날씨가 추워지고 유럽과 아시아의 겨울 수요가 늘기 시작하면 유럽이 수입할 수 있는 LNG는 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독일의 상황만 봐도 코앞으로 다가온 에너지 위기의 심각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클라우스 뮐러 독일 연방네트워크청장은 지난 8월 독일의 가스 저장고가 100% 가득 찼다고 해도 러시아 공급이 완전히 중단되면 2개월 반 이내에 재고가 바닥날 것이라고 말했다. 가스 인프라 유럽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독일의 가스 재고는 85% 찬 상황이다. 하지만 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이 이어진다면 두 달 정도 밖에 버티지 못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안 그래도 올해 들어 천정부지로 오른 가스값 때문에 신음해온 유럽 산업계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미 유럽 가스 가격은 작년 대비 400% 가량 폭등했고 전기요금도 치솟았다.
상대적으로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프랑스에서조차 철강, 화학 및 유리 제조업체 등 에너지 집약적인 기업들이 일시 폐쇄되기 시작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보도했다. 프랑스의 2023년 전기 도매가격은 1메가와트당 1000유로를 넘어서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EU는 오는 9일 브뤼셀에서 에너지 부처 장관들을 모아 긴급회의를 열고 치솟는 에너지 비용 억제를 위한 특별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로이터·블룸버그통신 등이 입수한 이 긴급회의 초안 문서에 따르면 △EU 전체의 에너지 소비 감축 △전력생산에 사용되는 가스 가격의 상한선 설정 △전력 관련 파생상품 거래 일시 중단 등이 이번 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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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업 줄도산에 금융위기도 우려…각국 비상대책 마련
스웨덴과 핀란드는 이날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한 지 이틀만에 에너지기업에 수십억달러의 긴급 유동성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전력생산 업체들이 계약한 선물 증거금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증거금 부족으로 에너지 기업들이 잇따라 도산할 경우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같은 글로벌 금융시장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스웨덴은 2500억크로나(약 31조6000억원)의 유동성을 투입할 계획이다. 스웨덴 정부가 적격 기업에 보증을 서고 이 보증을 이용해 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스웨덴 기업에는 내년 3월까지, 모든 북유럽 및 발트해 국가 기업에는 2주간 지원된다.
핀란드도 자금난을 겪는 자국 에너지 기업이 현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대 100억유로(약 13조6000억원)까지 대출과 보증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은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이끄는 인플레이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650억유로(약 88조3000억원) 규모의 구제책을 내놨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취약계층에 대한 보조금 지급,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수혜를 입은 기업들의 초과이익에 대한 세금(횡제세) 부과 등의 내용을 담은 3차 지원 패키지를 발표했다. 독일 정부는 그동안 노동자 계층에 일회성으로 지급했던 300유로(약 41만원)의 에너지 비용 보조금을 노인 연금 수령자(300유로)와 학생(200유로) 등 다른 그룹에도 제공하기로 했다. 주거지원금 대상자를 현재 64만명에서 200만명으로 늘리고 이들에게 415유로(약 56만원)의 난방 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한다.
독일 정부는 또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가격 브레이크’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기본 전력 사용 범위까지는 특별히 인하한 요금을 적용해 부담을 줄여주되, 이를 초과할 경우 가격 상한을 두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일정선 이상 에너지를 쓸 경우 요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의미다.
오스트리아도 전력 가격에 상한선을 정해 가계 부담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상한선은 지난해 가구당 평균 전력 소비량의 80%까지이며, 이를 초과해 사용할 경우 상한선이 적용되지 않는다.
한편, 러시아는 지난 2일 발트해를 지나 독일로 연결되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1’을 통한 가스 공급 중단을 갑자기 통보했다. 당초 사흘간의 점검을 거쳐 이달 3일 재개하기로 했으나 돌연 기술적인 결함을 이유로 무기한 중단을 알려왔다. G7이 러시아 원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 시행을 발표한 데 대한 보복조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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