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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는 22일(현지시간)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전 세계에서 AI 연산력에 쓰인 돈이 약 3600억달러(약 478조원)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구리 거래액보다 50%가량 많은 규모다. BCG는 2030년 거래액이 2조3000억달러(약 3051조원)로 늘어 현재 세계 원유 교역 규모와 비슷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연산력은 첨단 반도체가 만들어내는 데이터 처리 능력을 말한다.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이 엔비디아 등의 칩을 탑재한 서버를 사들여 이 연산력을 몇 년 단위로 고객에게 빌려주는 구조다.
문제는 시장이 덩치에 비해 세련되지 못하다는 점이다.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초대형 클라우드 업체와 앤스로픽·오픈AI 같은 AI 개발사들은 수백억~수천억달러 규모의 연산력 계약을 맺지만, 수천 개의 중소기업에는 그림의 떡이다. 위험을 피하거나 투기에 쓸 파생상품도 거의 없다.
연산력은 칩 종류와 서버, 위치, 사용 기간이 제각각이어서 사고팔기가 까다롭다. 기업들은 불투명한 중개인을 통해 남는 연산력을 사들인다. 비공식 중개인 상당수는 왓츠앱·텔레그램 같은 메신저로 물건을 홍보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첨단 원자재 거래라기보다는 마약 밀매에 가까워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장기 계약을 선호한다. 하지만 기술과 시장이 워낙 빨리 변해 몇 년 뒤에도 계약 상대방이 살아남아 약속을 지킬지 알 수 없다. 미국 AI 클라우드 업체 코어위브의 채권 금리 급등이 이런 불확실성을 보여준다. 대출기관들이 위험을 가늠하지 못하면서 중소 운영사들은 두 자릿수 금리를 물고 있다.
선물·스와프 속속 등장…규제 승인 대기
제대로 된 시장도 만들어지고 있다. 신생 거래소 컴퓨트익스체인지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위치·임대 기간·가격·재고별로 올려놓고 거래한다.
세계 양대 파생상품 거래소인 CME그룹과 인터콘티넨털익스체인지(ICE)는 인기 AI 칩의 임대료를 추종하는 연산력 지수를 개발한 스타트업들과 손잡고 연산력 선물 출시를 준비하며 규제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승인을 기다리지 않고 장외 상품을 먼저 내놓는 곳도 있다. 스타트업 아네라랩스는 지난 3월 가상자산 중개업체 팰컨X와 엔비디아 H100 GPU의 미래 임대료를 기초로 한 수십만달러(수억원) 규모의 6월물 시범 거래를 성사시켰다.
또 다른 스타트업 럭서는 데이터센터 운영사에 서버 한 대당 시간당 고정 수입을 보장하는 스와프형 계약을 제공한다. 시장 가격이 계약 가격보다 낮으면 운영사가 차액을 받고, 높으면 운영사가 차액을 내는 구조다. 규모는 아직 수천만달러(수백억원) 수준이다. 미국 밖에선 아키텍트파이낸셜테크놀로지스가 버뮤다 거래소에서 미국 내 칩 가치에 연동된 연산력 선물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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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이 큰 신시장엔 가상자산 업계 출신이 대거 몰렸다. 아키텍트의 브렛 해리슨 창업자는 파산한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미국 법인 사장을 지냈다. 럭서는 비트코인 채굴업체를 주로 상대했고, 아네라랩스 공동창업자 비슈와 나이크도 가상자산 기업가 출신이다. 코어위브 역시 가상자산 채굴업체로 출발했다.
기존 금융사들도 뛰어들고 있다. 대형 시장조성업체 DRW와 점프트레이딩은 CME와 연산력 선물을 준비 중인 리서치업체 실리콘데이터에 투자했고, 각자 연산력 거래팀도 꾸렸다. 점프트레이딩은 이달 연산력 거래 스타트업 이토마켓츠를 인수했다.
점프트레이딩의 데이비드 올슨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거래 양측이 계약을 지키도록 보장하는 청산소 같은 기반이 갖춰져야 시장이 빠르게 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도 “그 논의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시장이 성숙하기까지 수년, 길게는 수십년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인도 릴라이언스인더스트리에서 석유 트레이더로 일했던 나이크는 지금의 연산력 시장을 192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세계 석유 거래를 지배한 서방 석유 메이저 카르텔 ‘세븐 시스터즈’의 말기에 비유했다. 이들의 지배력은 산유국 국유화와 개방형 석유 시장의 등장으로 무너졌다. 이코노미스트는 연산력 시장도 비슷한 미래를 맞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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