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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라든 韓 팹리스, '차량용 반도체' 발판 삼아 기지개 켜나

최영지 기자I 2022.04.20 17:36:29

국내 팹리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점유율 1% 불과
전문가들 "전문인력 줄어…하위 기업 생존 어려워"
"국내 차량용 반도체 수요 많은 상황…성장 기회"
"기술 검증 기회 확대·자동차업계의 관심도 절실"

[이데일리 최영지 기자]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기업뿐 아니라 반도체의 ‘다품종 소량화’에 특화된 토종 팹리스를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와 실수요자인 자동차 회사의 관심도 병행돼야 한다는 조언도 잇따랐다.

2022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이미지=김일환 기자]
1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은 글로벌 반도체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미미하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가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분석한 결과, 미국이 가장 많은 54% 점유율을 기록했고 이어 한국(22%), 대만(9%), 유럽(6%), 일본(6%)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팹리스 부문 중 한국의 시장 점유율은 1%에 불과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등록 기준 국내 팹리스 기업은 2009년 약 200개사에서 2020년 약 70개사로 줄어든 것과 무관치 않다.

2000년대 초반까지 팹리스 창업이 활발하게 이뤄졌으나 후반에 들어서며 제한적인 창업 투자와 신규 인력 유입 감소세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 반도체 시장은 그간 대기업 위주의 메모리반도체 시장 성장세를 보였고, 이에 비해 중소 팹리스의 성장 기회가 없었다”며 “2000여개 팹리스를 둔 중국과 대비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국내 중소 팹리스의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박사는 국내 팹리스의 SWOT 분석을 통해 “팹리스 창업자와 전문인력이 줄어들고 있고 하위 기업들은 생존조차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면서도 “잠재력 있는 기업과 기술자를 발굴한다면 성장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진단했다.

업계에선 전기차, 미래차 시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이는 팹리스에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는 종류가 다양해 대량생산을 주로 해온 대기업보다 다품종 소량화를 하는 팹리스들이 개발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도 차량용 반도체 매출이 지난해 500억달러(약 59조8000억원)에서 2025년 840억달러(약 100조4000억원)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대기업뿐 아니라 팹리스들의 성장이 전 세계 내 반도체 점유율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최기창 서울대 시스템반도체 산업진흥센터 교수는 “차량용 반도체의 전망이 밝고 기회가 많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플레이어가 많지 않아 보이는 건 아쉬운 점”이라며 “팹리스 설계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며, 정부가 시설과 장비를 지원하는 공공나노팹 기능 확대와 반도체 시제품 생산을 위한 멀티프로젝트 웨이퍼(MPW) 지원이 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자동차 제조기업이 국내에 있다는 건 차량용 반도체의 수요 시장을 확대하기 가장 좋은 기회”라며 “자동차회사 입장에서는 검증된 제품을 원할 것이기에 기술실증(PoC)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며, 팹리스의 초기 진입을 위해 수요자인 자동차업계의 관심도 필요하다”고 했다.

업계에선 팹리스들 규모가 커짐에 따라 파운드리 투자도 확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DB하이텍·키파운드리 등 8인치 파운드리 기업들은 수요 급증에도, 생산능력(CAPA)을 확대해야 할지를 놓고 고심 중이다. 고객인 국내 팹리스의 성장 불확실성 탓이다. 팹리스가 많아진다면 투자 여력이 늘어날 것이고 호실적으로 직결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대 시스템반도체산업진흥센터 주관으로 열린 ‘테크 비즈 콘서트’에서 팹리스 관계자들이 참여해 현주소 및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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