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대형 SUV 팰리세이드를 출시하며 ‘당신만의 영역’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다. 팰리세이드라는 차명 조차도 ‘울타리’를 의미한다. 온전한 자신만의 공간을 원하는,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차량개발의 핵심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프레젠테이션에서도 공간에 대한 부분을 상당히 강조했다.
팰리세이드는 국산차로는 오랜 만에 나온 대박 물건이다. 출시 전부터 각종 미디어와 인터넷에서 평가가 극찬 일색이었다. 최근 경기도 화성에서 열린 미디어 시승회에 참가해 익숙하게 봐온 외관보다는 실내 위주로 살펴봤다. 아울러 운전자 뿐 아니라 탑승객 관점에서 정숙성과 승차감을 체크하면서 부족한 점을 중점으로 찾아봤다. 지나친 호평이 이어지면서 부족한 점은 가려져 있다. 설령 품질 문제가 터지면 실망도 크고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팰리세이드가 제시하는 ‘나만의 영역’은 과연 어떨까. 시승차는 고급 옵션이 다 달린 디젤 모델로 4900만원짜리 풀옵션이다.
먼저 전면부는 두꺼운 크롬 테두리를 두른 캐스캐이딩 그릴과 직선 위주의 디자인이 견고하고 단단한 느낌을 준다. 현대차 SUV 특징으로 자리잡은 범퍼 하단으로 내려간 헤드램프 덕에 싼타페 크기를 키워 놓은 듯 비슷해 보인다. 세로형태의 주간주행등이 켜지면 판이하게 달라진다.
측면은 포드 익스플로러나 쉐보레 트래버스와 같이 북미형 대형 SUV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C필러 디자인을 적용했다. 마치 픽업트럭에 하드탑을 씌운 것 같은 형태라고 할까. 정통 SUV의 느낌을 살려냈다. 차가 더욱 견고해 보이고 넓어진 쿼터 글래스로 3열 승객의 시야가 개선됐다.
후면부는 헤드램프에 맞춰 세로로 배치된 리어램프가 차체 양쪽 끝으로 몰려 실제 수치보다 폭이 더 넓어 보인다. “티볼리를 부풀린 대짜(?)가 현대차에서 나왔다’는 우스개 소리가 인터넷에 나온다. 실제 실물을 봤더니 쌍용 티볼리 에어의 느낌이 살짝 난다.
넉넉한 크기의 운전석 시트 쿠션은 예상보다 단단하다. 장거리 주행 시 피로도는 낮지만 익스플로러 같은 미국 SUV 처럼 몸을 푹 감싸주는 안락한 느낌은 뒤진다. 전동식 익스텐션이 적용돼 허벅지 받침을 연장할 수 있다.
스티어링 휠은 싼타페와 동일한 형태다. 정 중앙 현대 로고가 유난히 커서 매우 거슬린다. 라디에이터 그릴도 그렇고 이 차에 달린 현대 로고는 지나치게 큰 감이 있다. 중앙에 7인치 LCD 정보창을 갖춘 슈퍼비전 계기판은 제네시스 라인업에 장착되는 것과 유사하다. 심지어 기아 K9과 넥쏘, 제네시스 G90에만 쓰이는, 방향지시등 점등 시 측면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카메라도 적용됐다. 현대차 특유의 시인성 좋은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주행에 도움이 된다. 팰리세이드에 제네시스 고급감을 도입했지만 과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 특히 송풍구 방향을 조절하는 버튼은 마무리가 아쉽다. 재질감이 싸구려로 보일뿐 아니라 패턴이 지나치게 거칠다. 여성 운전자라면 손톱에 상처가 생길 수도 있겠다.
덮개가 마련된 대형 콘솔박스는 니로 EV에서 봤던 발랄한 아이디어의 컵홀더가 내장됐다. 평소에는 접어두었다가 컵홀더가 필요한 상황에 버튼을 누르면 튀어나오는 방식이다.
벤츠를 연상시키는 10.25인치 센터페시아 모니터는 화질이 상당히 뛰어나다. 다양한 기능도 포함하고 있다.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하고 인포테인먼트 모니터를 통해 3열 전동식 시트를 접거나 펼 수도 있다. 혼다 오딧세이에 적용된 ‘캐빈토크’기능과 유사한 후석 대화모드는 확성기 형태로 운전자의 목소리를 차량 전체에 울려퍼지게 하는 기능이다. 3열에 앉은 아이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오디오 조작 다이얼과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 테두리에는 육각형 패턴을 넣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그런데 어딘가 익숙하다 했더니 쌍용 G4렉스턴에서 봤던 디테일이다. 썬루프는 카니발과 유사한 듀얼식이다. 2열에 장착된 썬루프는 개방이 안 되는 글라스 루프다. 옵션 가격은 88만원으로 개방까지 되는 카니발과 동일하다. 바가지를 씌운 것일까. 다소 의아한 부분이다.
2열 승객을 위한 편의장비도 넉넉하다. 독립식 공조장치와 열선시트가 기본인 점은 칭찬할 만 하다. 그 밑으로 220V 인버터와 12V 파워아울렛을 갖췄다. 얼마전 시승한 토요타 시에나는 220V 인버터 대신 110V가 마련돼 당황한 기억이 난다. 특이하게 1열 좌석 옆면에 충전용 USB포트를 마련했다. 컵홀더는 무려 16다. 8인승이라면 1인당 2개씩 사용하라는 것일까. 컵홀더가 정말 많다. 뒷문 팔걸이 부분에도 2구(양쪽)의 컵홀더가 있다. '이렇게 많은 음료수를 채워 넣을 일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2열 독립식 시트를 갖추려면 29만원만 추가하면 된다. 팔걸이를 단 형태다. 7인승 카니발 리무진에도 없는 2열 통풍시트까지 따라온다. 미니밴 못지 않은 편안한 승차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2열 측면과 헤드레스트 옆에 위치한 버튼을 누르면 시트와 등받이가 자동으로 슬라이딩 돼 3열 탑승공간을 확보한다. 두 명만 탈 수 있던 맥스크루즈 3열과 달리 팰리세이드는 전폭이 늘어난 덕분인지 세 명이 탈 수 있다. 이 덕분에 맥스크루즈가 6, 7인승이었다면 팰리세이드는 7인승 8인승으로 늘어났다. 3열에 앉아 봤다. 실제 제원상 3인 탑승일뿐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가 아니라면 2인 탑승으로 봐야 한다.
3열 공간은 2열 시트를 최대한 뒤로 밀어도 체구가 작은 어린 아이나 여성이 타기에는 무리가 없다. 천정을 움푹 파놓아 머리 공간은 충분히 확보했지만 무릎 공간은 여느 SUV들과 마찬가지로 좁은 편. 180cm 정도의 성인 남성이라면 2열 승객의 양보가 필요하다. 2열 레그룸이 넉넉하기 때문에 흔쾌히 부탁을 들어줄 수 있다.
헤드레스트 높낮이가 조절이 안되는 것과 맥스크루즈에는 있던 3열 독립식 공조장치가 사라진 점은 아쉽다. 2 % 부족한 것들이 눈에 보인다. 3열에서 2열 시트를 접을 수는 있지만 원위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탑승공간 마련을 위한 2열시트 상단의 버튼만 조작할 수 있고 2열 슬라이딩 조작을 위한 별도의 레버가 없어서다.
길어진 차체 덕분에 트렁크 공간은 충분하다. 3열 시트를 펼쳐도 대형 캐리어 2개를 실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이 남는다. 왼편에 마련된 버튼을 통해 전동으로 3열과 2열 시트를 접으면 그야말로 광활한 적재공간이 펼쳐진다. 캠핑족들이 열광하는 풀-플랫 폴딩이다.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리는 2.2L 디젤 엔진은 여유가 느껴지지는 않지만 카니발에도 사용되는 만큼 부족하지 않은 출력을 제공한다. 특히 일상영역에서 아쉬움은 거의 없다. 약 150km를 시승하며 기록한 평균연비는 10km 초반대다. 다소 과격한 주행과 상시 4륜구동이 적용된 것을 감안하면 무난한 수치다. 적어도 뻥연비는 아닌 듯하다. 싼타페보다 커진 차체에 비해 공차중량이 크게 증가하지 않은 덕으로 보인다.
반 나절 함께 했던 팰리세이드는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영역으로 삼기에는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무게감있는 디자인과 넉넉한 편의장비, 무엇보다 미니밴 못지않은 공간활용성이 가장 큰 장점이다. 대신 커져버린 차체 때문에 오래된 아파트의 좁은 주차장, 좁은 골목의 노면 주차장에서는 주차할 때마다 골치를 썩일게 분명하다.
한동안 국내 대형 SUV 시장에서 팰리세이드의 상품성을 위협할만한 경쟁자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기아차 텔룰라이드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G4렉스턴과 싼타페, 쏘렌토 소비자는 물론이고 카니발 같은 미니밴 소비자도 상당부분 팰리세이드가 끌어 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허수가 상당수인 사전계약 대수 2만 여 대를 감안해도 출고 대기만 3개월은 잡아야 한다고 전해진다.
한줄평
장점: 듬직한 외관과 넉넉한 실내공간,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적절한 가격
단점: 부족한 소음진동대책(NVH), 국내 주차환경에겐 너무 버거운 차체 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