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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씨는 응급조치 후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로 현재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동안 관할 내 담당자들이 여러 차례 구조를 시도했지만, 결국 몸에 중화상을 입고서야 구조가 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노숙인이 갖고 있던 가방이 많이 탄 것으로 보아 발화점이 유력하다”며 “옷이나 침낭 등 섬유소재물에도 불이 붙어 방화 여부 등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씨는 이른바 ‘남인사마당 노숙할머니’로 알려져 있다. 주변 상인들에 따르면 차씨는 거동이 불편한 상태로 1년가량 탑골공원과 남인사마당 부근에서 노숙생활을 했다. 최근 2주 전부터는 아예 거동이 어려워 길바닥을 기어 다녔다.
지난 13일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비가 그친 뒤 칼바람이 매서운 날씨에도 차씨는 인도에 누워 있었다. 주변에는 음식과 음료가 널브러져 있고 대소변이 섞인 것으로 추정되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은박 돗자리와 침낭 등으로 몸을 가린 차씨는 미동조차 없이 기자의 부름에 작은 반응만 보이는 등 위태로운 상태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인은 “평소에는 할머니가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신문을 읽고 있었는데 한 달가량 장사를 쉬고 돌아와 보니 저렇게 거동을 못한다”고 말했다. 전국에 비가 내렸던 지난 12일에도 노숙할머니는 거리에서 온전히 비를 맞았다.
주변 노점상인과 행인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음식을 가져다주고 주변 청소를 해주기도 했지만 할머니를 구조할 방법은 없었다. 인근 노점의 한 상인은 “용변을 다 지린 상태로 몸을 질질 끌고 기어가니 몸에 상처도 나고, 얼마나 더러운지 모른다”며 “인사동 관광특구인데 관광객한테도 좋게 보일 리 없어 수차례 신고를 했지만, 당사자가 거부한다는 이유로 저렇게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상인은 “우리와 같은 국민 아니냐”며 도움을 주고 싶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에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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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경찰서 관계자는 “본인이 완강히 거절해 인권문제로 강제로 병원에 이송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도 “노숙인 종합상담센터와 일자리지원센터 등에서도 사회복지사들이 간호사와 함께 치료를 받자고 설득했지만, 완강하게 거부해 조치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특히 할머니를 설득해 구조한다고 하더라도 받아줄 병원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종로소방서 관계자는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지만, 방역과 치료비 결제 문제로 일반 병원에서는 받아 주지 않는다”며 “노숙인은 시립병원으로 주로 이송하는데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사회 취약계층에게 전해지는 충격이 큰 가운데, 그중에서도 최약체로 분류되는 노숙인이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 노숙인이 갈 수 있는 공공 의료기관마저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의료 공백’ 사태가 현실화한 것이다.
실제 서울 시내 병원급 이상 의료시설 283곳 중 노숙인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은 시립병원으로 동부·보라매·북부·서남·서북병원, 서울의료원 등 단 6곳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바뀐 탓에 노숙인들이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병원은 없다. 민간병원은 방역을 이유로, 공공 의료기관은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사회 취약계층의 의료공백 사태가 현실화한 셈이다.
노숙인 인권운동단체인 홈리스행동의 안형진 활동가는 “노숙인 의료공백 사태는 메르스 당시 이미 한 번 겪었는데 코로나 이후 또다시 발생했다”며 “노숙인도 국민이다. 이건 국민의 건강권에 관한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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