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폭탄 기억도 이제는 다 추억이야"…천리안 '39년 역사' 끝

황병서 기자I 2024.10.30 14:59:31

10월 31일부로 39년 만에 천리안 서비스 종료
하이텔·나우누리·유니텔 이어 역사 속으로
‘시원 섭섭하다’·‘요금 폭탄 맞던 기억’ 소감도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해줘서 고마웠어.”

PC통신 시작화면 (이데일리DB)
직장인 박모(44)씨는 오는 31일부로 종료되는 천리안 서비스를 두고 마음이 착잡하다고 전했다. 박씨는 제주에 살던 중·고교 시기 천리안 서비스로 라디오에 사연을 접수해 방송에 자기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거나, 단체 채팅방에서 만난 사람과 나눈 삼국지 소설·게임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사촌 누나는 PC 통신 채팅으로 만난 사람과 결혼에 골인했다고 소개했다.

박씨는 천리안 서비스 종료 소식을 들었을 당시 “마치 연락이 끊겼던 어릴 적 친한 친구의 안 좋은 소식을 다른 친구에게 듣게 되었던 느낌이었다”면서 “그동안 연락을 자주 주고받지 못해서 미안한 감정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1985년 국내 첫 PC 통신의 문을 연 천리안이 39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박씨처럼 아쉬움 등의 감정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앞서 천리안 운영사인 미디어로그는 지난 7월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10월 31일 PC 통신 서비스 처리안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미디어로그는 같은 달 11일 메일과 주소록 백업 서비스를 제공해왔고, 지난달 1일부터 문자 메시지와 뉴스 등의 서비스를 차례대로 종료했다.

시장 축소와 포털 서비스 강세 등으로 서비스가 종료되는 것이지만, 이 서비스를 이용했던 사람에게는 저마다 추억 등이 남아 있다. 직장인 김모(46)씨는 청소년 시절 PC 통신을 이용해 게임을 하다 요금 폭탄을 맞았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초고속 인터넷이 없었던 시기, 전화로 연결해서 사용해야 하는 PC통신 특성상 형과 게임을 하다 전화 요금이 8만~10만원이 나와서 엄마한테 혼났다는 것이다. 김씨는 “지금 내가 사는 집 통신료가 인터넷전화와 팩스, 인터넷을 결합해 봤자 3만원 초반대라는 점에서 당시 엄마가 화가 날 만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점점 없어지는 각종 서비스에 대해서 아쉬움도 드러냈다. 김씨는 “휴대폰도 없이 삐삐 하나로 살았고, 시티폰으로 버티다 노키아 모토롤라가 최고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네이버 말고도 다음과 야후코리아가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다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도 다양한 소회를 밝힌 누리꾼들도 있었다. 2002년부터 천리안 메일을 사용해왔다는 한 누리꾼은 “서버가 불안정했음에도 그놈의 정이 뭔지 애정을 갖고 사용해 왔다”면서 “사업주체가 몇 번 바뀔 때마다 곧 다른 포털 사이트에 넘어가겠지 했는데 이렇게 종료되니 시원 섭섭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전화요금 폭탄이 두려웠지만 밤새 채팅을 통해서 위로받으며 보낸 시간이 잊히지 않는다”면서 “천리안이 사라진다고 하니 또 한 시대가 막을 내리는 느낌”이라고 했다.

한편, 천리안 운영사인 미디어로그 측은 “함께했던 포털 서비스들이 하나, 둘 종료하는 시장 상황에서도 서비스를 지속하고자 노력했지만, 사업 환경의 변화에 따라 더는 양질의 메일 서비스를 유지하기 어려워 서비스 종료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하이텔은 2007년, 나우누리는 2012년, 유니텔은 2022년에 이어 천리안도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국내 1세대 PC 통신은 모두 사라지게 됐다.

천리안 운영사 미디어로그는 지난 7월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10월 31일 PC통신 서비스 처리안을 종료한다”고 밝혔다.(사진=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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