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이 어려운 이유는 본질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단번에 핵심을 드러내야 하죠. 또한, 단순함에는 오해를 감수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상대방을 믿지 못하면 불가능합니다.
갑자기 왜 ‘단순함’을 말하느냐구요? 디지털전환으로 세상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의 긴터널 속에서 배달앱으로 밥 먹고, 온라인으로 회의하고, 택시호출앱으로 택시 타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OTT앱으로 영화를 보고, 식당에 들어가기 전 QR체크인을 켜서 백신 접종을 증명하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ICT서비스들을 이용하는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복잡함 때문입니다. 기술은 첨단으로 얽혀 있더라도 쓰임은 편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직관적인 사용자경험(UX)을 만드는 일은 ICT 회사에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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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가는 디지털 회사의 CEO들은 스스로 ‘단순함’을 실천하고 있더군요.
최근 SK텔레콤 CEO가 된 유영상 대표는 바뀐 명함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더군요. 그리고 앞면에는 회사 주소가 없었습니다. 회사와 본인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이 전부인 그의 명함은 깔끔하고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유 대표는 “굳이 회사 주소를 넣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했습니다.
2018년, 염용섭 SK경영경제연구소 소장이 건넨 명함이 생각났습니다. 이름 석 자 크기가 명함의 3분의 2를 차지했죠. 호객행위를 하는 ‘삐끼’같이 보일 수도 있는데, 염 소장은 “항상 업의 본질을 고민하는데 명함의 본질은 이름이 아닐까 했다”라며 웃었습니다.
커다란 이름 석 자만 보이는 명함의 주인공에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도 있습니다. 필요 없는 것은 정리하고, 본질에 집중하는 일, 바로 ‘단순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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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단순함’이 성공하려면 고려해야 할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조직 생활에서 그렇죠. 호칭을 없애고 직급을 단순화하는 일이 창의성에는 도움이 되지만, 사내 질서가 흐트러진다거나 하는 반발을 살 수 있죠.
이때 중요한 게 CEO의 태도 아닌가 합니다. 얼마 전 만난 티빙의 양지을 대표는 별도 사무실이 없었습니다.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죠. 같은 층 회의실 옆 일반 책상을 사용하더라고요. 직원들과 다른 점은 책상 위에 놓은 ‘CEO 양지을’이라는 명패뿐이었습니다.
양 대표의 ‘단순함’은 사무공간뿐 아니라, 티빙 앱 전략에도 묻어났습니다. 양 대표와 직원들은 매일 아침마다 전날의 고객 피드백을 확인해 공유하고, 앱 편의성을 개선하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능을 추가하는 게 아니라 복잡한 탭은 지우고 핵심만 남기는 방향으로 변했다 하죠.
스티스잡스의 말처럼, 본질에 대한 탐구와 용기가 필요한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훨씬 어려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