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성창호)는 20일 국정원장 특활비 상납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공천개입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에게 총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35억원대 특활비 수수 부분은 검찰이 주장한 뇌물죄를 무죄로 보고 대신 국고손실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3년부터 2016년 9월까지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남재준·이병기·이병호 당시 국정원장들과 공모해 국정원 특수활동비 총 35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추가기소됐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이병호 전 원장에게 요구해 2016년 6~8월 매월 5000만원씩 총 1억 5000만원을 이원종 당시 비서실장에게 지원하게 한 혐의도 적용했다.
법원은 뇌물죄 구성요건인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재판부는 “국정원장들이 이전부터 임명을 원했거나 부탁했다는 등 사정을 찾을 수 없고 임명 대가로 박 전 대통령에게 사례나 보답을 할 만한 특별한 동기나 이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국정원장 직무수행이나 국정원 현안에 관한 각종 편의를 기대한다는 명목은 국정원장과 대통령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다소 막연하거나 추상적이다”며 검찰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이나 지원이 필요한 국정원 현안이 있었다고 판단할 만한 자료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과 ‘NLL 대화록 공개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등은 국정원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당시 박 전 대통령의 국정수행과 여야간 정국 주도권 쟁취와 관련한 중요한 정치적 이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국정원장의 특활비 전달이 뇌물이라고 충분히 입증되기 어렵다”며 “박 전 대통령 지시로 이 전 비서실장에게 전달된 것도 뇌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앞서 자금 공여자인 전직 국정원장들 1심 재판과 자금 전달자 역할을 한 문고리 3인방 1심 재판에서도 모두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았다. 자금 수수자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혐의가 유죄가 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 재판의 재판부는 전직 국정원장 3인 재판도 맡은 바 있다. 재판부는 당시에도 국정원장들이 특활비를 청와대에 준 것은 원장 인사나 국정원 업무에서 대통령의 도움을 기대한 측면이 있다는 검찰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검찰은 뇌물죄 대가성 성립에 대한 법원 기준이 일관적이지 않다고 반박하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을 단순 보조하는 비서실 직원인 조윤선 전 정무수석과 안봉근 전 비서관이 국정원 예산으로 국정원장에게 받은 상대적으로 소액의 돈은 대가성이 있어 뇌물이라고 했다”며 “정작 대통령 본인이 직접 지휘관계에 있는 국정원장들에게 받은 수십억원은 대가성이 없어 뇌물이 아니라는 1심 선고를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1심 논리는 직무상 상하관계인 하위 공무원이 상급자에게 나랏돈을 횡령해 돈을 주면 뇌물이 아니고 개인돈으로 돈을 주면 뇌물이라는 것으로 상식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나랏돈을 횡령해 공여해도 뇌물이며 이 경우 개인돈에 비해 죄질이 더 나쁘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박 전 대통령과 국정원장들이 국가 예산을 갖고 서로 주고받은 ‘뇌물 범죄’라고 정의했지만 법정에선 성립하지 않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부는 국정원장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자금을 바쳐서 무슨 이득을 얻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많았던 것 같다”며 “검찰이 명확한 증거로서 대가성을 입증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