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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따르면 홍콩 강제퇴직연금(MPF·Mandatory Provident Fund)을 운용하는 당국은 영국 여권을 사용해 이민을 가는 홍콩인들은 65세 은퇴 연령 전에는 MPF에서 돈을 인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21년 이후 영국해외시민(BNO) 여권을 사용해 영국으로 이주했다가 인출이 거부된 적립금은 38억달러(약 5조 2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MPF는 한국의 퇴직연금 격으로, 일반적으로 해외 유학, 사업 등으로 장기간 홍콩을 떠나는 경우엔 얼마든지 적립한 돈을 이용할 수 있다.
홍콩 정부가 새 국가보안법을 시행하면서 영국으로 이민을 택하는 수요가 증가한 데 따른 조처라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홍콩 입법회(의회)는 지난 3월 국가분열,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39가지 국가안보 범죄 및 이에 대한 처벌을 담은 국가보안법(기본법 23조)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기존 홍콩 국가보안법을 보완하는 성격의 법으로, 이 법이 시행된 이후 감시가 더욱 엄격해지고 언론·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도 더욱 강화했다. 사회 분위기가 팍팍해지면서 반체제 활동가 등을 포함해 홍콩을 떠나려는 사람들도 급증했다.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 1997년 이전에 태어난 홍콩인들은 BNO 여권 프로그램에 따라 영국 여권을 발급받아 비자 없이도 6개월 간 영국에 체류할 수 있었다. 2020년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시행하자 영국은 이듬해인 2021년부터 BNO 여권 프로그램을 확대, 5년 동안 영국에서 거주하며 일한 뒤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 정부의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까지 14만명이 넘는 홍콩인이 새 프로그램에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올해 1분기 BNO 여권 신청은 전분기대비 두 배 급증한 9693건으로 집계됐다. 2년 만에 최대 규모다.
MPF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면서 영국으로 이주한 홍콩인들은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중년 남성은 영국 이민을 택한 뒤 아파트 구매를 위해 계약을 체결했지만, 6만달러(약 8290만원)가 넘는 돈이 MPF에 묶여 계약금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 MPF 적립금 조기 인출에 실패하면 사업은 꿈도 꿀 수 없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홍콩 워치의 연구·정책 고문인 메건 쿠는 “많은 홍콩인이 MPF에 많은 돈을 저축하고 있으며 또한 의존하고 있다. 기본법 23조 시행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홍콩을 떠나려 하고, 그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그것을 차단하고 있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기 인출을 시도하고 있어 인출 거부도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