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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징역 4년"…朴정부 외압 견딘 윤석열사단 '뚝심'

한광범 기자I 2018.04.19 15:08:58

정권 외압·국정원 방해공작 뚫고 기소·공소유지
지난 정권서 좌천 거듭…정권교체 후 화려한 비상
원세훈 기소 5년만에 마침내 확정판결 이끌어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19일 대법원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징역 4년 확정 판결과 함께 막을 내린 국가정보원 댓글 정치공작 재판은 2013년 구성됐던 국정원정치공작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의 뚝심이 이룩한 성과다. 이들은 집권 초기였던 박근혜정권의 거센 외압 속에서도 꿋꿋이 수사와 재판에 임하며 5년여 만에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을 이끌어냈다.

수사팀은 2013년 4월 채동욱(59·사법연수원 14기) 검찰총장의 강력한 지원 아래 꾸려졌다. 앞서 경찰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씨 수사와 관련해 느닷없이 대선 사흘 전이던 2012년 12월16일 밤 11시에 “정치개입 댓글은 없었다”는 엉터리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선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경찰은 박근혜 정권 출범 두 달 후인 2013년 4월 ‘말단 직원들의 개인적 일탈’이라는 취지의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국정원 윗선에 대한 수사가 전혀 되지 않은 꼬리 자르기식 엉터리 수사였다.

◇채동욱 지원 힘입어 강도 높은 수사…낙마 뒤 ‘풍파’

이런 상황에서 구성된 수사팀은 채 총장의 지원 아래 빠르게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인 정치공작 정황을 규명해나갔다.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인 은닉과 비협조 속에서도 수사 한 달여 후 원 전 원장에 대한 신병처리 수순을 밟았다. 하지만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구속영장 청구에 강하게 반대하며 결국 같은 해 6월 원 전 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수사팀은 공소유지와 함께 추가 수사에도 전력했다. 하지만 살아있는 정권의 반격은 만만치 않았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원 전 원장 재판 결과에 박근혜정권의 정통성이 걸렸다’고 판단하고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인 수사·공소유지 방해 공작을 벌였다. 당시 국정원에 파견 중이던 검사 3인도 공작에 가담했다.

비밀업무를 수행하는 정보기관임을 앞세워 국정원은 압수수색용 가짜 사무실을 만들거나 제출할 내부 문건 중 선거·정치개입 언급하는 부분을 볼 수 없도록 비닉 처리했다. 수사팀은 국정원 직원들을 소환하거나 포털 압수수색 등을 통해 증거를 차곡차곡 수집해나갔다.

그런 와중에 채 전 총장은 2013년 9월 느닷없이 터져 나온 혼외자 의혹으로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수사팀으로선 든든한 버팀목이 사라진 것. 실제 그후 수사팀은 검찰 내부에서도 견제를 받았다.

윤 팀장은 국정원 직원에 대한 압수수색·체포영장 청구에 대해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며 반대했다. 결국 윤 팀장은 전결로 영장을 청구해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했다. 그는 이 일로 수사팀에서 쫓겨났고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정권 차원 외압·국정원 방해공작 속 공소유지

수사팀은 새 팀장으로 공안통인 이정회 수원지검 형사1부장으로 맞아 공소유지에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들은 국정원 상부의 지침에 따라 철저하게 위증으로 일관했다.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했던 직원들은 법정에서 모두 이를 전면 부인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사진=연합뉴스)
원 전 원장은 2014년 9월 선고된 1심에서 정치관여로 인한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되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무죄로 인정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1심은 원 전 원장의 지시 중 대선 관련 내용이 없다며 선거운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수사팀의 완패였다.

그러나 2015년 2월 선고된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은 핵심 파일이었던 425지논·시큐리티 파일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해 여기 기록된 국정원 직원들의 트위터 계정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선거운동의 방향성이 인정된다며 선거법 유죄 판결을 내렸다. 원 전 원장은 결국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대법원은 같은 해 7월 전원합의체에서 만장일치로 425지논·시큐리티 파일에 대한 진정성립을 부인하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선거개입 여부에 대해선 일절 판단하지 않았다.

파기환송심은 같은 해 8월 심리가 시작됐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심리가 길어질 수 있다며 원 전 원장을 보석으로 풀어줬다. 수사팀과 재판장인 김시철 부장판사와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김 부장판사의 발언에 수사팀 검사가 ‘예단을 드러냈다’며 법정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파기환송심 장기화, 오히려 전화위복…국정원 내부 자료 확보 가능

더욱이 심리가 길어지며 수사팀 검사들의 상황도 악화됐다. 윤석열(57·23기) 전 팀장과 박형철(50·25기) 부팀장은 징계로 연이어 한직인 고검으로 인사가 났다. 결국 계속되는 좌천성 인사에 검찰 내 선거사건 1인자였던 박 부팀장은 2016년 1월 검찰을 떠났다. 공소유지에 전력하던 남은 검사들도 지방으로 발령 나며 공소유지를 위해 서울을 오가는 힘든 여정을 이어나갔다.

파기환송심 심리는 1년을 훌쩍 넘겨 계속됐다. 재판부는 2017년 2월로 예정된 법관 인사 전에 결론을 내려달라는 검찰과 변호인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법관 인사에서 재판장이 김시철 부장판사에서 김대웅 부장판사로 교체됐고 재판은 재판부의 사건 파악을 위해 순연됐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재판 지연과 순연은 수사팀에게 전화위복이 됐다. 2017년 5월 대선을 통해 정권이 교체됐고 국정원 자체 적폐청산TF를 통해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국정원의 각종 문서들이 속속 검찰에 전해졌다. 원 전 원장의 노골적인 선거개입 지시가 적힌 문건들이었다. 재판부는 결국 이를 핵심 증거로 판단해 지난해 8월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재차 법정구속했다.

지난 정부 한직을 떠돌던 수사팀은 정권교체 후 화려하게 비상했다. 윤석열 전 팀장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파견 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박형철 전 부팀장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반부패비서관에 임명됐다. 또 수사팀 멤버였던 진재선(43·30기)·김성훈(43·30기) 부장검사와 이복현(45·32기) 단성한(44·32기) 검사는 모두 서울중앙지검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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