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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장낙원)는 A택시회사 소속 기사 B씨가 “회사의 부당 승무정지 징계를 취소해달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30년 넘게 택시업계의 고질적 문제로 지목돼 온 사납금은 법인택시 소속 택시기사가 매일 회사에 지급해야 하는 돈이다. 택시기사들은 하루 수입 중 사납금(2018년 서울 기준 1일 13만 5000원)만 회사에 수납·납부했고, 나머지 부분은 택시기사가 추가 수입으로 가져갔다. 임단협에 따라 임금 기준이 되는 소정근로시간을 정해 택시기사에게 별도의 급여도 지급했지만 이는 매달 120만~140만 원 수준에 그쳤다.
◇사납금제, 고질적 악습…기사에 영업부진 떠넘겨
근태를 파악하기 힘든 택시업계의 상황을 고려해 도입된 임금 체계였다. 수입이 많을수록 택시기사 수입도 늘어날 수 있는 구조지만, 반대로 사납금을 채우지 못할 경우 모자란 금액만큼 월급에서 공제가 됐다. 택시회사 입장에선 근태관리를 따로 할 필요가 없으면서도 사납금을 통해 고정된 수입을 담보할 수 있었다.
이를 택시기사 입장에서 보면 코로나19와 같이 택시 영업이 부진할 경우에 모든 책임이 택시기사에 전가되는 구조인 것이다. 이는 결국 택시기사들의 무리한 운행을 유발해 택시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택시기사들이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것에 초점을 두면서 ‘승차거부’나 ‘과속운행’ 등이 빈번하게 발생한 것이다.
결국 국회는 2019년 8월 국회 본회의에서 사납금을 금지하는 내용의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초에도 여객자동차법 훈령을 통해 사납금 금지를 명시하고 있었지만 구속력이 약해 현장에선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국회는 상위법인 법률에 택시의 수입 전액을 회사가 관리하는 ‘전액관리제’와 함께 사납금을 금지하는 내용을 명문화했다.
2020년 1월 사납금 제도를 금지하는 내용의 여객자동차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유사 사납금 제도를 운영하는 택시회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A택시회사 역시 이 중 하나였다. A택시회사는 지난해 1월 단체협약을 통해 ‘성과급 월급제’를 도입했다. 택시기사가 매달 벌어야 하는 최소수입을 월 470만 원으로 정하고 △540만 원까진 기사에게 60%를 △540만 원 이상 금액에 대해선 기사에 65%를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법원 “기준액 기준 페널티 안되지만 인센티브는 가능”
B씨는 지난해 3월 최소 운송수입금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상벌위원회에 회부됐고, 승무정지 7일의 징계를 받았다. 그는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잇따라 구제신청을 했으나 “기준금액 월 470만 원은 과도하게 설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 판정을 받자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B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회사가 기준액 미납을 이유로 기사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자체가 개정 여객자동차법이 금지하는 ‘수입금 하락에 따른 위험의 전가’와 기준액 납입을 강제해 불법을 종용하는 행위”라며 “불이익 종류를 불문하고 엄격히 금지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사납금제와 같이 기준액에 미치지 못하는 수입금을 낸 기사에게 차액만큼 기본급여를 삭감하는 등 금전적인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 전형적 사례에 해당하지만 해고나 징계 등 신분상 불이익도 책임 전가와 기준액 납입을 강제하는 것이므로 역시 금지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택시회사의 단체협약이 노사 간에 절차상 하자 없이 체결됐더라도 기준액 미납을 이유로 택시기사를 해고나 징계하는 일부 규정들은 현행법에 위배돼 모두 무효”라며 “B씨에 대한 징계사유는 이 같은 단체협약에 근거를 둔 만큼 모두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 냈다.
재판부는 다만 기준액 미만 수입에 대한 페널티와 달리 기준액 초과를 기준으로 한 성과급 지급은 위법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중노위는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