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뜨는 군사용 ‘열기구’…위성·드론 시대에 18세기 전략 부활

방성훈 기자I 2025.09.30 14:27:50

미국·폴란드·이스라엘 등 감시용 열기구 재도입
비용 저렴하고 탐지 어려워 전략자산 재조명
中 정찰 풍선이 도입 촉발…美의회 별도 예산도 배정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위성·드론이 하늘을 뒤덮은 최첨단 시대에도 군사용 열기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군대가 감시·통신·정찰을 목적으로 18세기부터 쓰이던 열기구를 재도입하면서, 저비용·고효율의 새로운 전장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정찰 풍선이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했다는 분석이다.

(사진=AFP)


29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태평양에서 진행된 미군의 대규모 군사훈련 ‘밸리언트 실드’에서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적외선·전자파 감지 장비를 탑재한 채 성층권에서 띄워진 정찰 열기구가 신형 정밀 타격 미사일(PSM)을 이동 중인 함선으로 유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올해 미 육군은 42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고 저고도 체공형 감시 기구인 ‘에어로스탯’ 함대를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미사일·항공기를 조기에 탐지하기 위해 미국에서 에어로스탯 4기를 구매했다. 이스라엘은 국경지대에 열기구를 띄워 레바논에서 발사되는 로켓을 탐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역시 통신 중계 용도로 열기구를 활용해 드론 작전을 장거리로 확대하고 있다. 수십년 간 주변부에 머물던 열기구 전술이 다시금 전면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열기구의 군사적 활용은 사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1783년 몽골피에 형제가 열기구를 발명한 뒤, 프랑스 혁명군이 1794년 전투 현장에서 수소 열기구를 띄워 오스트리아군의 동향을 파악한 사례가 시작이었다. 미국 남북전쟁, 보불전쟁,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정찰·통신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항공기와 위성 시대가 열리면서 열기구는 방공용 ‘방해 기구’(barrage balloon) 이상의 비중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효율성과 비용 때문이다. 에어로스탯은 지상에 묶인 상태로 고도 3~5km 상공에 띄워 운용되며, 저고도에서 위협하는 드론이나 순항미사일 등을 탐지하는 데 탁월하다. 조기경보통제기(AWACS)보다 비용은 훨씬 적게 들면서도 수주 동안 공중에서 감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물론 수난의 역사도 있었다. 미국이 워싱턴 인근에서 순항미사일 위협을 감시하려고 운용한 ‘통합 순항미사일 감시체계’(JLENS) 프로그램이 2015년 사고에 휘말리면서다. 당시 3km 상공에 띄운 기구가 굵은 케블라 줄을 끊고 이탈해 메릴랜드와 펜실베이니아 상공을 150km가량 표류하며 주민들을 놀라게 했고, 결국 사업은 중단됐다. 그러나 최근 국경 감시·마약 밀수 추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경험이 축적되며 부활 토대가 마련됐다.

군사용 열기구 열풍을 촉발한 최대 촉매제는 중국이다. 2023년 2월 미국 상공을 며칠간 떠돌다 전투기에 격추된 중국의 대형 정찰 풍선 사건은 미국 안팎에 큰 충격을 안겼다. 아울러 중국은 현재 대만해협에만 100개가 넘는 고고도 정찰 풍선을 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고고도 기구는 일반적인 에어로스탯과 달리 끈에 묶이지 않은 채 고도 24~37km의 성층권에 띄워진다. 인공위성보다 지면에 훨씬 가까워 더 선명한 영상을 찍을 수 있고, 통신 신호도 우주보다 가까운 고도에서 더 효과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 인공지능(AI)이 풍향을 분석해 장기간 특정 지역 상공에 머무를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열기구가 위성보다 정찰 품질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면서, 발사 및 회수가 쉽고 비용까지 저렴해 차세대 감시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평가한다. 발열·소음이 거의 없어 탐지 자체가 어렵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탑재 중량 30~40kg라는 단점은 센서 소형화 기술 덕분에 상당 부분 보완됐고, 결과적으로 열기구 활용 범위는 점점 넓어지는 추세다. 허드슨연구소의 브라이언 클라크 연구원은 “적이 일부러 찾지 않는 한, 열기구는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군은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수십개 열기구를 ‘떼 지어’ 띄워 전장을 감시하고, 심지어 무장 드론을 기구에 매달아 적 후방에 투하하는 방식까지 검토 중이다. 미 의회는 올해 7월 통과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 5000만달러(약 702억원)를 배정해 성층권 열기구 실험을 지원하기로 했다.

다만 한계도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고고도 강풍 속에서 열기구를 조종하는 일이 여전히 어렵기 때문이다. 전력 공급이 태양광에 의존하다 보니 장비 운영에도 제약이 따른다. 전자전 상황에서는 통신이 방해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상대국 전투기를 격추했을 때처럼 외교적 파장이 크지는 않다는 점에서 각국 군대는 기구 활용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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