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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구제역이 동시 발생하면서 정부가 농가에 지급해야 하는 보상금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전염병이 발생해 가축을 살처분하면 정부가 보상을 해주는 시스템도 농가의 모럴 해저드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비용 부담·유산 소문에 접종 꺼려
7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보은 젖소농장과 정읍 한우농장의 구제역 항체형성률은 각각 19%, 5%에 그쳤다. 면역력이 생기는 기준으로 삼는 70%를 한참 밑도는 수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읍 구제역 농가의 소 20두를 검사했더니 1마리만 항체가 형성돼 있었다”며 “항체형성률이 5%라면 접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소 농가도 구제역 접종이 부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이 관계자는 “백신 비용 부담 등의 이유로 접종을 하지 않은 모럴 해저드가 있었다”며 “백신 접종을 하면 소가 유산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고 설명했다.
또 일부 농가에서는 얼어있는 백신을 녹이지 않고 사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 경우 구제역 면역력이 생기는 효과가 없다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효과가 없는 ‘물백신’이 구제역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은과 정읍 농가 모두 지난해 10월 백신 예방접종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4~2015년 구제역 파동 당시에는 물백신 논란으로 농식품부와 검역본부 관계자 32명이 징계 처분을 받았다.
◇ 구제역 검사는 돼지 중심..소는 소홀
농식품부는 구제역의 전국적인 확산 가능성을 작게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농가의 백신 항체 형성률이 소 97.5%, 돼지 75.7%로 매우 높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항체 형성률 평균치가 전수조사가 아닌 표본조사 수치라는 점에서 믿을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특히 그동안 구제역 검사는 돼지 중심으로 해왔고 소는 전체의 10%만 표본검사를 해왔기 때문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식품부 관계자도 “소에 대한 구제역 검사는 소홀했다”고 했다.
충북 보은과 전북 정읍은 100㎞ 이상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이번 구제역이 산발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보은 일대는 축산시설이 밀집된 곳이어서 구제역이 빠르게 확산될 우려가 있다. 발생 농장 반경 500m에는 젖소와 한우를 사육하는 농가가 11곳 더 있고, 3km 안에 사육 중인 소·돼지는 9800여마리에 달한다.
농식품부는 보은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가 과거 국내에 잔존해 있다가 재발한 것이 아닌 새로 유입된 바이러스로 추정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유입경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추운 날씨에서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3~6개월 간 사멸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AI와 마찬가지로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병 걸려서 죽으면 보상금 지급
AI와 구제역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정부가 농가에 지급해야 하는 살처금 보상금은 AI의 경우 정부 추산 2600억원에 달한다. 농가 생계안정 자금 등 직접적인 비용을 비롯해 육류·육가공업, 음식업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간접적인 기회손실 비용까지 모두 합치면 피해 규모가 1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구제역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그만큼 혈세 투입을 늘려야 한다. 지난 2010년 구제역 파동 때는 소요된 재정만 2조7000억원에 이르렀다.
2010년 이후 구제역 백신 접종이 의무화됐다. 그러나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2011년부터 2015년 초까지 가축 살처분 보상금으로 피해농가에 지급한 예산은 1조8500억원이 넘는다.
지난해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으로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농가에 대한 과태료가 대폭 올랐다. 하지만 농가는 비용 부담 등의 이유로 외면하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낮은 과태료 수준이다. 소 구제역의 경우 백신 미접종에 대한 과태료가 1회 적발시 200만원에 불과한 반면, 살처분시 소값의 80%인 마리당 약 400만원을 보상해주다보니 백신 접종의 유인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