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향후 외국계 기관 투자자들이 어느 편을 지지하냐에 따라 경영권 분쟁의 승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MBK파트너스와 영풍은 집중투표제 도입 정관 변경 의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국내외 기관투자자들과 일반 주주들 설득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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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책위)는 17일 제1차 위원회를 열고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 안건에서 ‘집중투표제’와 ‘이사 수 제한’ 등 주요 의안들에 찬성표를 던졌다.
고려아연 임시주총 제1-1호 의안인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은 이번 주총의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최 회장 측이 MBK·영풍의 이사회 장악을 막기 위해 꺼내든 카드다.
집중투표제는 복수 이사 선임 시 선임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고, 이를 1명 또는 여러명(수인)에게 집중해 투표할 수 있도록 해서 소수 주주의 이사 선임 가능성을 높여주는 제도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의결권을 특정 이사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이 경우 MBK 연합이 과반에 가까운 지분을 갖고 있어도 이사회를 장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최 회장이 일부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면 더 낮은 지분율을 보유하고도 MBK 측이 추천한 이사의 이사회 진입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제1-2호 안건인 ‘이사회 이사 수 상한 설정 관련 정관 변경안’도 찬성했다.
이 안건이 주총에서 통과되면 이사회 이사가 19인 이하로 제한된다. 이사회 수를 늘리려는 MBK 측이 반대하는 안건이다.
수책위의 이번 결정으로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 힘이 실리게 됐다. 다만 수책위는 이사 후보를 MBK파트너스-영풍 측에서 3명, 최 회장 측 후보 가운데 3명씩 균형 있게 지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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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은 출석주주의 3분의2 이상 동의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주주 별로 ‘최대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3% 룰’을 적용한다.
MBK·영풍 연합은 영풍(25.42%), 장형진 고문(3.49%), 한국기업투자홀딩스(7.82%) 등 세 주주에 대부분의 지분이 분산돼 이들의 총 의결권 지분은 9%로 제한된다. 50%에 가까운 의결권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MBK가 자력으로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을 부결시키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반면 최 회장 측은 특별관계자 53인이 17.5%의 지분을 3% 미만으로 분산해 보유 중이다. 영풍정밀(1.96%), 최 회장(1.84%) 등 주요 주주의 지분도 2%를 채 넘지 않는다. 우군으로 분류되는 세력 중에선 한화(7.75%), 현대차(5.05%) 등을 제외하면 모두 3% 미만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양 측 모두 추가 의결권 확보가 절실한만큼 국민연금은 최 회장과 MBK·영풍 연합의 경영권 분쟁에서 사실상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국민연금은 작년 9월 당시 고려아연 지분 7.48%를 쥐고 있었지만 작년 10월 고려아연 공개매수 과정에서 주식을 처분해 4.51%로 지분율이 낮아졌다. 보유 지분율 자체는 높지 않지만 국민연금의 결정이 다른 기관 투자자들에게 미칠 영향 측면에서 이번 수책위 결정은 임시주총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국민연금이 사실상 최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관건은 외국계 기관 투자자들의 표심이 될 전망이다. 이들이 어느 편을 지지하냐에 따라 경영권 분쟁의 승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미 주요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과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은 MBK·영풍을 지지한다. 두 기관은 집중투표제 도입 정관 변경에 ‘반대(Against)’의사를 밝혔다.
다만 이번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이 정해짐에 따라 다른 외국계 기관 투자자들도 이를 따를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의안상정금지 가처분 결과도 주총 결과에 주요 변수다. 법원이 집중투표 방식의 이사 선임이 위법하다고 판단하면 국민연금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이번 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적용할 수 없게 된다.
반면 법원이 가처분을 기각한다면 최 회장 측이 더 승기를 잡게 된다. MBK·영풍은 집중투표제 도입 정관 변경 의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국내외 기관투자자들과 일반 주주들 설득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MBK는 국민연금 수책위 이후 입장문을 내고 “이번 고려아연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가 도입된다면 소수주주 보호라는 제도 본연의 취지는 무시되고, 최윤범 회장 자리 보전 연장의 수단으로만 악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집중투표제 도입 시 1대 주주와 2대 주주 간 지배권 분쟁 국면은 장기화될 것”이라며 “이런 상황은 회사는 물론 주주들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