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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중국 외교부 발표와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이날 열린 전국민인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 결과 왕 위원이 외교부장에 다시 복귀하게 됐다.
그동안 외교라인을 통솔하던 친강 외교부장은 취임한 지 7개월만에 면직됐다. 이는 1949년 현 중국이 건립된 이후 가장 짧은 재임 기간이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왕 위원은 직전 임기에서도 9년을 근무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임명했던 친강을 짧은 기간에 내치고 새로운 인물이 아닌 왕 위원을 다시 임명한 것은 그만큼 중국이 처한 국제정세가 심상찮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현재 경제 반등이 요원한 상황에서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때 풍부한 외교 경험을 지닌 왕 위원을 전면에 내세워 외교 정책의 안정을 가져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왕 (신임) 부장은 지난 수십년간 가장 강력한 외교부 장관이 됐는데 이는 당의 규약과 선례에서 벗어난 수준”이라며 “3기 임기를 시작한 시 주석의 정치적 위기와 외교 문제를 안정시켜야 하는 최고 지도부의 시급함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신들은 왕 위원 체제의 중국 외교 정책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지만 현재 급속도로 냉각된 미·중 관계가 풀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왕 위원이 이미 친강 직전까지 외교부장을 맡았던 만큼 다시 복귀하더라도 시진핑 주석이 정한 중국의 대미정책 방향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봤다. 로이터통신도 워싱턴 아메리칸대의 중국 공산당 지도자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번 인사가 양국 관계의 마찰을 부르는 구조적 원인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교 경험이 풍부하다곤 하나 왕 위원 역시 전랑 정책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는 지난 2월 독일 뮌헨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정찰풍선 사건(중국 정찰풍선이 미국 영공에 진입해 미군이 격추)을 두고 논쟁을 벌여 양국 관계가 악화하기도 했다.
강경 일변도인 중국 외교 정책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몇 년간 중국 외교부 권한이 커지면서 실무자들까지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다”는 중국 공산당 외교부 관료의 말을 전하며 중국내 지식인, 당과 정부 관계자 사이에서는 중국 외교 정책에 대한 우려가 많다고 전했다.
다만 미국 국무부는 이번 왕 위원의 외교부장 복귀와 관련해 미국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면서도 앞으로 있을 고위급 회담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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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왕 위원의 복귀로 한국은 중국과 관계 개선을 기대할만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다. 왕 위원은 2014년 외교부장 취임 이후 최소 5차례 방한하는 등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로 알려졌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사태로 양국간 갈등이 깊어졌지만 이후 2019년부터 다시 한국을 찾아 양국 관계 정상화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 왕 위원은 친강이 잠적 중이던 지난 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을 만나 양국간 소통 강화와 신뢰 재건을 강조하면서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한편 이번에 면직된 친강에 대한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았다. 외교부장에 취임 후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그는 지난달 25일 이후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은 채 잠적해 행적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중국 외교부가 건강 문제를 잠시 언급하면서 중병설이 돌기도 했고 여자 아나운서와의 불륜설, 중국 정부로부터의 조사설 등도 나왔다. 하지만 전날 외교부는 친강의 면직을 발표하며 어떤 이유도 전하지 않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와 관련해 중국 공산당 인사 시스템에는 승진을 위한 엄격한 예비 ‘신체검사’가 있기 때문에 건강은 물론 부패·불륜 등의 문제는 이미 검증됐을 것으로 봤다. 이 신문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시 주석을 겨냥해 ‘독재자’라고 발언한 직후 친강이 자취를 감춘 것에 주목했다. 지난해까지 미국 대사를 역임한 친강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으로 정찰풍선 사건 이후 악화했던 미중 관계가 해빙무드를 탈 것이라는 기대감이 많았지만 독재자 발언 이후 급속히 냉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