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톤과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등 굵직한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이끄는 수장들이 본 최근의 사모대출 시장의 분위기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라 운용사(GP)가 기관 투자자(LP) 자금을 모아서 기업에 대출을 제공하거나, 회사채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사모대출을 자본시장이 갈수록 선호하는 추세다. 사모대출은 사모대출펀드(PDF)와 사모신용펀드(PCF)로 나뉜다. 이미 미국, 유럽 같은 글로벌 시장에서 은행을 대신할 자금조달 창구가 되고 있다.
이때 기회를 포착한 글로벌 토큰증권(ST) 시장 관계자들이 사모대출 상품 개발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토큰화 된 PDF와 PCF 상품은 거래 투명성을 담보하고 유동성을 키울 수 있어 전문가들은 관련 산업의 성장세가 사모대출 시장의 성장세 못지않게 매서우리라 예측한다.
이와 달리 국내는 잠잠한 모양새다. 업계 관계자들은 규제 장벽에 가로막혀 관련 산업으로의 진출이 불가하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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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사모대출 시장 규모가 갈수록 커짐에 따라 글로벌 토큰증권 업계가 국채, 채권, 주식, 원자재 등 주요 금융 상품의 토큰화 뿐 아니라 사모대출 영역까지 토큰화 범위를 넓히고 있다. 실제로 IB 업계는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이 대폭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블랙록은 오는 2028년 말까지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 운용자산(AUM) 규모가 3조 5000억달러(약 4674조원)에 이를 것이라 예측했다.
사모대출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리라는 예측이 쏟아지면서 관련 상품을 토큰화하려는 움직임도 동시에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PDF나 PCF를 디지털 토큰으로 변환해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에서 거래하거나 이전시키도록 하는 식이다. 예컨대 스위스 시그넘 뱅크는 지난해 말 토큰화 된 사모대출 상품을 출시한 바 있다. 이 가운데 특히 PCF 상품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18%나 성장할 만큼 각광 받고 있다. 일례로 미국 PEF 운용사 해밀턴레인은 PCF를 토큰화한 바 있다. 핀테크 기업 피규어 테크놀로지스 역시 블록체인 플랫폼을 통해 PCF 토큰화를 활발히 진행하는 곳 중 하나다.
글로벌 시장이 사모대출 토큰화에 주목한 이유는 ‘리스크 헷징(위험 관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토큰화 된 사모대출 상품은 거래 투명성을 높여주고, 유동성 향상, 결제와 정산 시간 단축이라는 장점이 있다고 알려졌다. 최근 ‘이데일리 글로벌 STO 써밋 2024’ 행사에 참석한 샤리 누난 리알토 마켓 최고경영자(CEO)는 실물연계자산을 토큰화 하는 실용적 사례 중 하나로 사모대출 분야 토큰화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모대출이 최근에 많은 모멘텀을 얻고 있는데 이에 따라 특히 사모신용 부분에 리스크가 쌓여가고 있다”며 “리스크를 특정기업, 부문에 편중되지 않고 분산시킬 필요가 있는데 토큰화 된 사모대출 상품이 이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 단호한 금융위에 속 타는 국내 시장
사모대출 시장은 국내에서도 2021년 자본시장법이 개정된 이래로 개화하고 있다. 이와 맞물려 최근 22대 국회가 ST 시장 법제화를 위한 법안 발의에 나설 예정이라 글로벌 업체들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토큰화 된 사모대출 상품이 나오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다.
그러나 업계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모대출 토큰화가 이뤄지려면 SPC로 지분증권을 만들거나 채권 방식으로 발행하는 식이 돼야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워낙 완고해 당국의 정책 변화 없이는 불가하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보충성의 원칙’을 이유로 지분증권 채무증권 등 기존 증권으로 발행 가능한 자산의 토큰증권 발행을 금하고 있다. 보충성의 원칙이란 특정 법령 조항이 특별한 경우에만 적용되고 허용될 수 있다는 예외적 조항을 의미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자산 유동화 측면에서 국내에서는 조각투자 기반으로 미술품 등 자산에 투자하고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자가 시작됐는데 보충성의 원칙을 고수하면 채권이나 지분증권 등으로 풀어야 하는 기업 등의 프로젝트 사업에 필요한 자금조달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해외에서는 이미 채권 지분 등에 대한 ST가 발행되면서 자금조달도 진행하고 있는데 국내는 자산 유동화만 가능하게 출구를 절반만 열어주는 모양새라 산업이 균형 있고 빠르게 성장하기 어렵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