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인 양 단속 영상 찍어 월 1500만원…법치 흔드는 유튜버들

권효중 기자I 2022.06.08 19:06:28

유튜버 돈벌이 된 '사적 제재' 콘텐츠
불법 오토바이 단속, 허위매물 확인
사법기관 불신, 법치주의 붕괴 우려
전문가 "수사기관 신뢰 회복 필요"

[이데일리 권효중 김형환 기자] ‘딸배(오토바이 배달 노동자를 낮춰 부르는 말) 헌터 동네 근황’

지난 6일 한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 제목이다. 영상 속 오토바이 운전자는 번호판은 없었지만 신호를 제대로 지키고 있었다. 이 유튜버는 해당 운전자를 찍어 올리며 자신이 동네의 오토바이 운전자를 ‘참교육’해 신호를 지키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유튜브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사적 제재 콘텐츠, 일명 ‘참교육’ 영상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참교육’은 상대방을 호되게 혼내준다는 의미로 수사기관이 아닌 개인이 나서 범법자들을 벌한다는 개념이다. 일부는 ‘경찰보다 유튜버가 낫다’고 옹호하지만, 이러한 사적 제재는 법치주의의 근간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다.

한 유튜버가 2020년 12월 12일 경기도 안산시 법무부안산준법지원센터 앞에서 조두순이 탄 차량을 발로 밟아 파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사기관 불신’ 이용…‘참교육’으로 돈 버는 유튜버

‘참교육 영상’은 유튜브는 물론,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2020년 12월 조두순 출소 당시 다수의 유튜버들이 조씨의 차량을 파손하고, 주택을 맴도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흡연 청소년 계도, 배달 오토바이 단속, 중고차 허위매물 확인 등 유튜버가 직접 나서는 ‘사적 제재’ 콘텐츠의 종류는 다양하다.

이러한 참교육 영상을 보는 이들은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해결해주지 않는 일들을 유튜버가 대신 해줘 ‘속 시원하다’ ‘믿고 본다’고 반응한다.

평소 중고차 허위 매물 참교육 영상을 자주 본다는 김모(31)씨는 “국가가 못하는 걸 하는 유튜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허위매물 중고차 관련 콘텐츠에 출연했던 윤모(36)씨는 “지난해 3월 허위매물 사기에 당했는데 정식으로 고소하게 되면 시간이 너무 소요될 것 같았다”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도움을 요청했는데 3일 만에 해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유튜버들은 이런 시청자들을 이용해 조회수에 따른 수익을 얻고 있다. 8일 유튜브 분석 사이트 녹스인플루언서에 따르면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 참교육 영상을 제작하는 A 유튜버(구독자 약 8만명)의 지난 5월 기준 월수익 예측은 1017만~1770여만원에 달했다. 지난해 12월 수익창출 허가를 받은 A씨는 5개월 만에 최대 월 1770만원을 벌게 된 셈인데, 여기에는 ‘유료 멤버십’, ‘후원계좌’ 등 부가적인 수익창출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감안하면 수익은 더 클 것이란 얘기다. 중고차 허위매물을 잡는 유튜버 B씨의 5월 수익 예측은 약 470만~833만원, 같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C씨의 월수익 예측은 약 369만~643만원으로 추정됐다.

“사적 제재는 법치주의 파괴…수사기관 신뢰 회복해야”

이러한 사적 제재 콘텐츠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속함’이다. 유튜버 B씨는 “공권력은 바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우리는 빨리 해결할 수 있다”며 “수사기관에선 3개월 이상 걸리는 일을 하루 만에 해결한다”고 자부했다. C씨 역시 “시민들이 경찰이 아닌 우리를 찾는 이유는 빠르기 때문”이라며 “경찰에 고소, 합의 후 피해 회복까지는 최소 한 달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경찰 등 수사기관은 중고차 허위 매물 신고 등이 접수돼도 인력 부족이란 현실적인 한계로 조사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서울의 한 경찰서 지능팀 경찰관은 “사건이 몰리면 비번인 날에도 매일 나와서 조사를 할 정도”라며 “요새 민원인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얻은 법 지식이 있어서 수사가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져 늦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수사과 출신 다른 경찰관도 “최대한 빨리 수사를 하지만 최대 1인 30개 정도까지 밀릴 수 있는 게 업무”라며 “일반인이 직접 ‘참교육’에 나설 수 없게 우리가 빠른 수사를 하려면 인력 보충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적 제재가 곧 사법기관 불신, 법치주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적 제재가 횡행하고 국민이 여기에 의지하는 건 법치주의의 붕괴로 볼 수 있다”며 “공적인 수사기관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황태정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적 제재는 자력 구제를 금지하고 국가의 형벌권을 확립한 근대법의 원리에 반하는 행동”이라며 “수사기관의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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