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는 얼마 전에도 아들과 갈등을 겪었다. 유씨의 아들은 이전에도 파마가 허용된 학교에 다녔는데, 같은 반 아이들 사이에서 파마붐이 일자 조르기 시작했던 것. 그는 “파마를 해주면서 드는 비용도 생각보다 부담스럽다”며 한숨을 쉬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지난 24일“고등학생에게 파마와 염색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 벌점을 부과하는 학교 학칙은 인권 침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학부모와 현장 교사들은 이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시도교육청이 인권위의 결정에 따라 일선 학교에 파마·염색을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배포할 수도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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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이번 인권위 결정에 우려를 표했다. 조성철 교총 대변인은 “인권위의 결정은 학교 현장을 모르고 내린 결정”이라며 “학생 생활지도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이번 인권위 결정은 교사들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인권위 결정에 강제성은 없다. 하지만 시도교육청의 학교 행정지도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교총 측의 걱정이다. 실제로 조희연 교육감은 학생들의 ‘두발 자유화’에 긍정적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이 2018년 9월 ‘서울 학생 두발 자유화’를 선언하고 학생들의 염색·파마 등을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관내 중·고등학교에 안내한 게 대표적 사례다. 이후 2019년 10월 기준 701개교 중 456개교(65%)는 염색을, 506개교(72.2%)는 파마를 허용하는 것으로 학칙을 개정했다.
교사들은 이번 인권위 결정으로 염색·파마를 전면 허용하는 학교가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학생 간 위화감 조성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서다. 염색이 허용된 한 고등학교 교사 김모(34)씨는 “우리 학교도 염색이 가능해지면서 아이들이 경쟁하듯이 염색을 하고 있다”며 “염색을 한 아이와 그렇지 못하는 아이 간 위화감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학생생활지도가 더욱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지금도 일부 학생들이 인권을 주장하며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는데 이번 인권위 결정으로 이런 분위기가 더 심화될 것이란 의미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사 이모(27)씨는 “지금 우리학교는 C컬 파마(약한 수준의 파마)를 허용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허용범위를 넘어선 과한 파마를 하고 오면 가끔 실랑이를 벌인다”며 “생활지도를 할 때 아이들이 이번 인권위 결정을 언급할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고 했다. 이모씨는 이어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알게 된 동료 교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학생 복장 지도를 하다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더라”며 “누가봐도 용모 불량이 심각한데 학생들이 우기다 보니 교사들이 힘들어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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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 문제로 자녀와 갈등을 겪는 학부모들도 불만을 제기하긴 마찬가지다. 실제로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염색·파마 문제로 자녀와 갈등을 겪는다는 내용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기도 오산에서 중3 아들을 키우는 박모(51)씨는 “아이가 아침마다 머리만 신경 쓰다 보니 가끔 언성이 높아질 때가 있다”며 “아이에게 ‘학생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면 아이는 나를 ‘꼰대’로 본다”며 울상을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원단체는 학생들을 생활지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생들의 인권은 계속 강화되고 있는 만큼 이를 제지할 권한을 교사들에게 부여해달라는 것. 조성철 교총 대변인은 “염색이나 파마 같은 권한을 학생들에게 주는 만큼 문제 행동 시 이를 제지할 방안이 있어야 한다”며 “주어진 권리에 상응하는 만큼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경우 처벌할 권한을 교사에게 주는 생활지도법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교총이 입법을 주장하고 있는 생활지도법은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가 아동학대 혐의로부터 면책받을 수 있도록 하는 보호장치다. 교사의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학생 행동을 분리 조치하고 학교생활부에 이를 기재하는 내용 등이 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