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 생산 절반 이전하라”는 美요구 공식 거부

방성훈 기자I 2025.10.02 14:05:10

지난 주말 美상무장관 50대 50 나누자 제안에
대만 협상 대표 “합의한적 없다, 논의조차 없었다"
"반도체 산업은 대만의 실리콘 방패이자 안보 지렛대"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대만 정부가 미국이 제안한 ‘반도체 생산 능력의 절반을 미국 내에서 확보하라’는 요구를 공식 거부했다고 CNN비즈니스 등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진=AFP)


정리쥔 대만 부행정원장은 이날 미국과의 5차 무역협상을 마친 뒤 귀국해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협상팀은 반도체 생산을 50 대 50으로 나누기로 합의한 적이 전혀 없다”며 미국과의 협상에서 반도체 생산 절반을 미국으로 이전하라는 요구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논란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지난 주말 한 방송 인터뷰에서 “대만 반도체의 절반은 미국에서 생산돼야 한다”며 압박성 발언을 하면서 불거졌다. 그는 대만이 사실상 세계 첨단 반도체의 95%를 공급하는 현실을 거론하며 “만일 중국의 침공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물량을 미국까지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만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이러한 요구가 대만 안보에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반발했다. 대만은 자국 반도체 산업을 중국의 침공 억제력인 ‘실리콘 방패’로 간주하며, 전략적 자산 이전시 국가안보와 산업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야당인 국민당(KMT) 소속 쉬위천 입법위원은 “이것은 협력이 아니라 노골적인 수탈”이라며 “미국이 TSMC의 핵심 생산 역량 분할을 강요한다면 실리콘 방패 효과는 사라지고 대만의 전략적 지렛대도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만 국책연구기관인 대만경제연구원의 류야정 연구실장 역시 “생산능력을 미국으로 이동시키면 공급망 일체성이 무너져 산업 생태계가 약화한다”며 “단기적으로는 관세 인하 혜택이 있을 수 있겠으나, 장기적으로는 대만에 불리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대만 TSMC는 그동안 미국의 압력에 일부 대응해 왔다. 2020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120억달러를 투입해 반도체 공장을 착공했으며, 올해는 총투자액을 1650억달러로 확대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만 사회 일각에서는 “미국이 대만의 핵심 산업을 빼앗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대만 정부는 이번 5차 무역협상에서 미국이 대만에 부과한 관세(현재 20%) 인하 등 일부 진전이 있었음을 인정했지만, 반도체 생산 이전 문제는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정 부행정원장은 “대만의 성공은 반도체 기업, 소재·장비 업체, 공급망이 한데 모여 효율적인 생태계를 만들어낸 덕분”이라며 “산업 기저를 해체하는 요구는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의 압박에도 대만은 반도체 산업을 ‘생존의 방패’로 삼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일각에선 양국 관계가 교역 문제를 넘어 전략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국이 군사적 위협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반도체 협상은 대만에 안보와 경제가 뒤엉킨 복잡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외신들은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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