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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지난해 4차례의 민관협의회와 올해 1월 공개토론회, 박진 장관의 피해자·유가족 직접 면담 등을 통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왔다. 아울러 5차례의 한일 외교장관 회담 등 고위급을 포함한 양국 외교 당국 간 긴밀한 협의를 하며 우리 입장을 전달, 일본을 향해 `성의 있는 호응`을 촉구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난색을 표했다. 직접 사과 대신, 기존 담화를 계승하는 수준에서 입장을 표명하겠다는 게 일본의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피해 배상을 진행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본의 피고 기업들(미쓰비시중공업·일본제철)에 대한 구상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걸면서 양국 간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설익은 해결책을 꺼낸 배경에는, 공급망 불안과 북핵 위협 등 경제·안보 분야에서 일본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 중 3명만 생존해있을 정도로 대부분이 고령이며, 확정판결 후 5년의 시간이 지난 것도 고려 요인이다.
박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일본에게 새로운 사죄를 받는 게 능사는 아니다. 기존에 공식적으로 표명한 반성과 사죄의 담화를 일관되고 충실하게 이행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일본 정부도 민간의 자발적 기여는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피고 기업들의 배상금 지급 여부인데, 재단이 구상권을 행사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취재진을 만나 구상권과 관련해서 “현재로서는 구상권 행사를 상정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 측의 중요한 요구 사항이 전부 빠진 `반쪽짜리` 대책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가운데, 정부안에 반대하는 피해자 측이 판결금 수령을 거부한다면 사태는 더 꼬인다. 무효 소송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해자 측 법률 대리인단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윤석열 정부는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자신들의 외교적 성과에 급급하여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이 아닌 ‘기부금’을 받으라며 부당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또다시 희생을 강요하며 피해자들의 인권과 존엄을 짓밟고 있다”고 비판했다. 피해 당사자인 양금덕 할머니도 제3자 변제 방식에 대해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야당도 일제히 정부를 저격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을 짓밟는 2차 가해”라며 “국민은 이 굴욕적인 강제징용 배상안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누가 국가의 자존심 다 내팽개치고 돈 몇 푼 받아오라 시키기라도 했나”라고 질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