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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이 생명줄"…레바논 국민, 암호화폐 채굴해 생계유지

방성훈 기자I 2022.11.07 15:59:01

美달러 대비 레바논 파운드 환율 평가절하 '후폭풍'
레바논 은행, 달러 인출 금지…현지통화 인출시 15%만 지급
생계 어려워진 국민들, 직장·학업 포기하고 비트코인 채굴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국가 재정이 사실상 파산 상태에 이른 레바논에서 국민들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채굴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자국 화폐 가치는 물론 미국 달러화의 실질 가치까지 폭락하며 암호화폐가 대체 통화로 자리잡은 영향이다.

지난달 5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크레디트 리바나이스 은행 한 지점에서 고객들이 예금에 접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AFP)


6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레바논 정부는 지난 9월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기 위해 자국 화폐의 환율을 1달러당 1507.5파운드에서 1만 5000파운드로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이 계획은 지난 4일 철회됐지만, 이미 한 달 이상 지속된데다 IMF 지원을 받기 위해선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에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레바논 경제는 2019년 가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후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 등까지 겹쳐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는 3년새 95% 이상 폭락했고, 최저임금은 월 450달러에서 17달러로 쪼그라들었다. 레바논의 물가상승률은 지난 6월 210%를 넘기는 등 올해 수단에 이어 2위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의 환율 변경 발표 이후 레바논 국민들은 달러화 예금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몰려갔지만, 뱅크런(대규모 인출사태)을 우려한 레바논 은행들은 달러화 인출을 아예 막아버렸다. 대신 레바논 화폐로 인출이 가능토록 했지만, 실제 가치의 10~15% 수준만 지급하고 있다. 미화 1달러의 실제 가치가 최대 15센트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에 레바논 국민들은 비트코인과 스테이블 코인(달러 등 법정통화에 연동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인 테더 등을 대체 통화로 쓰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물론 직장인들까지 학업이나 생업을 포기하고 암호화폐 채굴에 나서고 있다. 비트코인을 급여로 지급하는 직장은 인기몰이를 하고 있으며, 이를 중개해주는 업체까지 생겨났다. CNBC는 “많은 현지 주민들이 암호화폐를 생존의 생명줄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은 사실상 기능을 잃었고 현재는 비트코인 지갑이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은행 업무가 시시때때로 중단되는 데다, 정전이 잇따르면서 자동화기기(ATM)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일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또 간신히 돈을 찾더라도 본래의 10~15% 수준으로 화폐 가치가 폭락한 데다, ATM 기기 이용시 강도 범행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점도 생활 방식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한 시민은 “은행에 맡겨둔 달러화 예금은 아이클라우드나 아이폰 앱 결제 등을 위해서만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CNBC는 이러한 극단적 경제 위기를 해결해야 할 신임 대통령 선출마저 미뤄지면서 국정 공백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레바논의 사회적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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