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단독]"촉법소년 연령 하향 안돼"…대법원, 국회에 반대 의견서

한광범 기자I 2023.04.12 16:50:01

애초 '신중검토' 입장서 더 강경 선회…국회에 '반대' 의견서 회신
"13세 소년, 성장하는 과정…반사회성 있더라도 개선가능성 더 커"
"소년보호처분이 형사처벌보다 더 효과적 개선·교화책 될 수 있다"
"檢 소년재판 개입 확대? 형사재판과 달라…혼란 우려&qu...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정부가 촉법소년의 연령을 현행 만 14세에서 13세로 하향하고 소년보호사건에서의 검사의 개입을 확대하는 내용의 소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가운데, 대법원은 “근본적인 해결이 이뤄질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이 담긴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이데일리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확보한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의견서에 따르면, 대법원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소년법 개정안에 대해 주요 개정 사항에 대해 명백히 반대 입장을 드러내며 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2월 28일 국회에 촉법소년의 연령 상한을 13세로 하향하고 소년보호사건에서의 검사 개입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소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대법원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법사위의 의견조회에 따라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를 지난 2월 17일 국회에 회신했다.

대법원은 22쪽 분량의 의견서에서 “13세 소년이 잘못을 하게 된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소년의 가정환경 개선이나 정신질환의 치료 등 적극적인 사회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채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이뤄질 수 없다”고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어 “13세 소년에 대해 형사처벌을 부과하기 위해선 13세 소년이 범규범에 따라 행위할 수 있는 능력인 책임능력, 즉 사물의 변별능력과 그에 따른 행동통제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며 “이들에게 성인에게 부과하는 형벌을 동등하게 부과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실증적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소년 비행, 부모 학대 등 가정환경 영향…형사처벌 부과 능사 아냐”

교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어린 소년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한 부적절성도 언급했다. 대법원은 “실무적으로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는 13세 소년의 경우 부모의 학대, 경제적 빈곤 등으로 인한 가정의 파탄, 정신질환 등으로 인해 사물변별능력이나 그 변별에 따른 행동통제능력이 결핍된 경우가 많다”며 “비난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형사처벌을 부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3세 소년은 정신적·육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으로서 성인에 비해 반사회성이 고정화되지 않아 교육적 조치에 의한 개선가능성이 크다”며 “다양한 보호처분의 활용을 통한 신속한 교육과 치료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13세 소년이 수감이 됐을 경우 교화가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대법원은 “13세 소년에 대한 형사절차가 진행될 경우 즉각적인 치료와 교육 등이 이뤄질 수 없어 개선·교화의 가능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 소년교도소의 현황이나 운영실태를 살펴볼 때, 교도소 입소를 통해 개선될 것이라는 점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형사처벌이 중점을 둘 경우 제대로 된 보호나 교육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사건이 종결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될 경우 보호처분 등 적절한 보호·교육적 처우가 신속하고 탄력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그 대신 검찰에서 조건부 기소유예 등으로 사건이 종결될 경우 소년의 개선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5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접견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면서 현재 13세 소년에게 부과되는 보호처분이 형사처벌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고 했다. 현행법상 소년원 6개월 미만 보호처분은 만 10세부터, 최장 2년의 소년원 보호처분은 만 12세부터 가능하다. 형사사건에서의 벌금형 및 징역형 집행유예 등에 비해 오히려 처벌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설명이다.

또 촉법소년 연령 하향으로 소년 중 형사처벌 대상을 확대하는 개정안의 내용이 ‘반사회성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이라는 소년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했다. 소년범에 대한 처벌 위주였던 미국과 영국도 오히려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UN아동권리위원회 “14세 미만 아동 범죄자 취급 안돼”

대법원은 “13세 소년에 대한 형사처벌 내지 소년에 대한 처벌 강화를 통한 교정 효과에 관한 연구 결과는 확인되지 않은 반면, 미국과 영국은 소년범죄 처벌 강화에 대한 부정적 연구 결과가 축적돼 교정주의 및 보호주의에 입각한 소년사법체계로 복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와도 맞지 않는다는 점도 언급했다. 앞서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하는 소년법 개정안과 10세 이상부터 소년법에 따라 구금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형사책임 최저연령을 현행과 같이 14세로 유지하고 14세 미만 아동을 범죄자로 취급하거나 구금하지 않을 것을 권고했다.

대법원은 “객관적 근거 없이 국민의 법감정을 명목으로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것은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경계할 것을 권고한 ‘여론의 압박에 호응해 아동 발달에 대한 합리적 이해를 간과’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만 13세 소년의 범죄율이 높아졌다거나 책임능력이 올라갔다는 등의 객관적 지표가 없는 상황에서 형사 미성년자의 연령 하향을 이처럼 정책적으로 접근하는 순간, ‘책임이 없으면 형벌이 없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손상된다”며 “13세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사회적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대법원은 소년보호사건에서의 검사 개입 권한을 규정한 부분에 대해서도 명확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현재 소년보호사건으로 분류될 경우 검찰이 사건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경찰 단계에서 직접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된 경우 검찰로서는 사건 내용에 대한 파악도 불가능하다. 또 소년재판에서 처분이 내려진 경우, 사건 기록 역시 모두 법원에서만 일정시간 보존되다가 폐기된다.

◇개정안, 소년재판 시작부터 끝까지 檢 개입 확대

정부의 소년법 개정안은 소년보호사건 절차 곳곳에 검사가 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소년부에서 △소년보호사건 심리 개시를 결정 시 △보호처분 결정 및 변경 시 관할 지방검찰청에 지체 없이 통지하도록 했고, 소년보호 사건이 종결됐을 경우엔 사건기록을 관할 지방검찰청에 보내도록 한 것. 또 불처분 결정에 대한 항고권도 검사에게 부여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검사의 소년보호사건 재판절차 참여를 허용하거나, 사건기록과 결정서를 보내도록 할 경우 소년보호사건의 비공개가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 또 형사재판과 달리 소년의 교화 및 개선 가능성에 중점을 두는 소년보호사건의 직권주의적 심리구조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반박했다.

소년법은 소년보호사건에 대해 비공개로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년의 인격을 보호하고 사회복귀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년이 비행을 저지른 것 자체를 비밀이 되도록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소년의 성격과 성장과정 등뿐만 아니라 가정의 사생활에 관한 사항에 대해 소년과 보호자로부터 솔직한 진술과 협력을 얻기 위해 절차의 비밀성은 필수불가결하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소년법 개정안은 소년재판의 개시부터 처분 이후까지 검찰의 개입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면서 “소년보호사건 절차에 형사사건에서 과거의 범죄사실의 확인, 공소제기 및 유지에 특화된 검사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은, 소년보호사건의 특수성은 물론, 소년의 갱생 도모라는 소년사법제도의 근본 이념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사와 피해자의 불처분 결정에 대한 항고권에 대해서도 “소년심판절차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적절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구체적으로 “소년심판은 형사재판절차와 달리 소년에 대한 후견적 입장에서 소년의 환경조정과 품행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하기 위한 심문절차”라며 “범행의 내용도 참작하지만 소년의 환경과 개인적 특성을 근거로 소년의 개선과 교화에 부합하는 처분을 부과하게 되는 만큼 일반 형벌 부과와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또 “책임주의에 입각한 형사제재의 필요성에 익숙한 검사가 피해의 결과에 정비례하지 않은 보호처분 결과에 대한 이의제기로서 항고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 소년심판절차의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소년사법 이념에 따른 소년심판절차의 운영이 아니라, 향후 당사자주의에 입각한 성인에 대한 형사재판절차와 유사한 구조로 진행돼 소년사법 이념이 몰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실제 언론에 보도되는 촉법소년의 범죄 중 촉법소년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소년재판을 받을 수준의 사건이 대부분”이라며 “소년들을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교화·교육할지를 뒷전으로 하고 어떻게 처벌을 강화할지에 논의를 집중하는 현 상황이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이라는 소년법 제정 취지에 맞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대법관)도 지난 2월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소년법 취지에 맞게끔 아이들의 환경을 조정해서 성행을 교정해서 궁극적으로 원만한 인격체로서 성장하는 데에 국지적인 역량을 하도록 소년사법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연령(하향) 논쟁으로 (그런 관심이) 조금은 얇아지지는 않을까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