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9일 이우영(76)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이 조부인 이해승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지정과 재산환수조치를 취소하라고 법무부장관과 행정안전부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에 따라 이해승이 후손들에게 물려준 300억대 재산을 환수할 수 있게 됐다.
◇ 대법 “이해승은 친일파, 재산환수해야”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위원회)는 2009년 9월 이 회장의 조부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하고 그의 후손이 물려받은 서울 은평구 일대 토지 2922㎡를 친일재산으로 결정했다.
이씨의 조부는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5대손이다. 한일합방이 이뤄진 1910년 7월 일제에서 후작 작위와 은사공채 16만8000원을 받았다. 그는 당시 데라우치 총독을 만나 감사 인사를 하고, 이토 히로부미의 묘를 참배하는 등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귀족 지위와 특권을 누렸다.
이 회장은 “조부는 대한제국 황실 종친 자격으로 후작 작위를 받은 것이고, 일제의 식민정책에 동조하지 않았으니 소급해서 법을 적용한 것은 위법”이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이 회장의 주장 대부분을 받아들였으나, 2심은 원고 패소판결했다.
2심은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하는 것은 정당하고 그가 일제강점기에 취득한 재산은 친일재산에 해당한다”며 “이미 처분한 재산이라고 해도 국고로 귀속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2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소급입법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원고의 신뢰가 확고하다거나 보호가치가 크지 않은 반면에 개정법 규정을 적용함으로써 달성되는 공익은 매우 중대하다”며 이해승의 친일행위를 거슬러 올라가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이어서 “헌법재판소도 ‘한일합병의 공으로’ 부분을 삭제한 개정법 관련 규정이 소급입법금지원칙이나 신뢰보호원칙 등을 위배하지 않아 합헌이라고 결정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 친일재산 처분했어도 다른 재산으로 대신 환수
이와 함께 재판부는 이미 매각한 친일자산을 국고로 환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친일재산 국가귀속 결정이 취소됐다고 하더라도 다른 재산에 대한 국가귀속결정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친일재산귀속법상 친일재산이 처분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친일재산의 요건을 달리 정하고 있지 않고, 법 시행 전에 제3자에게 처분된 재산도 포함된다”며 “이로써 침해되는 사익이 위 법률로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과 비교하여 크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이 헌법을 위반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씨는 이 사건과 별도로 2008년 조부가 소유한 경기도 포천에 있는 임야 24m²와 191필지의 국가귀속결정을 취소하라고 소송을 내서 2010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당시 반민족규명법상 친일행위를 인정하려면 ‘한일합병의 공으로’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했으나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판결은 국민의 공분을 샀고 국회는 2012년 ‘한일합병의 공으로’ 부분을 삭제하고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행위’로 고쳐서 법 적용이 유연해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구법에 따라 이뤄진 결정에 대해 개정법을 새로 적용하는 것이 소급입법금지원칙이나 신뢰보호원칙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하급심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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