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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과 경주시는 이날 간담회에서 경주 황남동 120호분 아래에서 발견한 1호 목곽묘 발굴 현장과 출토 유물을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1호 목곽묘의 역사적인 의미를 △신라 고분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단서 △경주에서 가장 오래된 금동관의 흔적 발견 △신라 시대 순장자의 인골을 확인한 첫 사례 등을 꼽았다.
신라 최상위 계급 장수 무덤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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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는 지금으로부터 약 1600년 전인 4세기 말~5세기 전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주곽(主槨, 시신을 안치하는 공간)과 부곽(副槨, 부장품을 매장하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금귀걸이, 철솥, 토기 등 165점의 유물이 함께 발굴됐다. 주곽에서는 금동관과 큰 칼, 그리고 무덤 주인공의 치아 일부 등이 발견됐다. 부곽에선 각종 부장품과 함께 시종으로 추정되는 순장(殉葬)된 인골 1구도 함께 확인됐다.
무덤 주인은 30세 전후의 나이로 당대 최상위 계급의 신라 장수로 추정된다. 이번 발굴조사를 진행한 이민형 신라문화유산연구원 팀장은 “주곽에서 금동관과 함께 주인공이 착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귀고리, 큰 칼이 발견됐다는 점, 그리고 부곽의 갑옷이 가죽을 차용한 경량형 갑옷이라는 점은 무덤 주인의 계급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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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자는 성별 미상으로 신장은 당시 신라 사람들의 평균이었던 160~165㎝로 추정된다. 눈길을 끄는 것은 순장자의 다리가 O자 형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헌석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처음부터 순장을 기획했으나 순장자의 신체 사이즈와 무덤 공간이 맞지 않아서 다리를 O자 형태로 순장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인을 알 수 있는 흔적이 없고, 저항도 없었던 것으로 보여 순장자는 사망한 상태로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금동관 조각에선 고구려 영향 흔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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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가 앞으로의 경주 발굴 조사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황남동 1호 목곽묘와 황남동 120호분의 축조 시기는 50여 년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이 짧은 시기에 무덤 위에 무덤이 연달아 만들어진 이유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종훈 국가유산청 역사유적정책관은 “아직 신라에 대한 발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국가유산청은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 발굴 현장과 출토 유물을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을 맞아 오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국민과 APEC 방문객에 공개한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두 달 전 취임하며 경주 발굴 현장의 펜스를 철거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며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APEC 기간 경주를 방문할 세계인과 함께 나누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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