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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과의 연인 관계를 알렸다는 이유로 말다툼하다 여자친구인 고(故) 황예진(25)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 중인 30대 남성 A씨를 비롯 김병찬에 이어, 지난달 애인을 흉기로 찌른 후 아파트 아래로 떨어뜨려 살해한 혐의로 구속 송치된 김모(31)씨까지 교제살인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신변보호를 받던 전 애인의 집을 찾아가 가족을 살해한 혐의로 지난 12일 구속된 이모(26)씨에 대해서는 경찰이 신상공개 여부도 검토 중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교제폭력 피해자 10명 중 8명 이상이 여성인 것으로 드러났다. 남녀 쌍방인 경우를 제외하면 여성 피해자의 비율은 각각 △87.25%(2018년) △84.69%(2019년) △85.29%(2020년)인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매년 경찰에 약 2만건에 달하는 교제폭력 신고·상담 건수가 접수됐는데 그중 형사 입건된 교제폭력 사건은 총 2만9085건이었다. 그중 폭행·상해 혐의가 2만880건(71.79%)으로 가장 많았고, △체포·감금·협박 3054건(10.5%) △성폭력 234건(0.8%)△살인 및 살인미수 108건(0.37%)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21일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오히려 스토킹 범죄 신고가 약 4배 증가해 하루 105건 이상 접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에는 예년 대비 최소 55%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울러 신변보호 요청 건수도 지난해 1만4700건 수준에서 올해 2만1700건으로 급격하게 늘어남에 따라 법안의 허점뿐 아니라 경찰의 인력과 예산 문제까지 지적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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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예산과 인력, 법 제도가 미비한 점을 이유로 업무에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지만, 전문가는 피해자가 직접 국가에 보호해달라고 요청한 만큼 하루빨리 법안을 보완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또 여성이 수많은 교제폭력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물학적 한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뿌리 깊은 가부장제 영향이라고 분석하며 양성평등 교육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교제폭력과 스토킹은 중대범죄의 전조 현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예방 차원에서 중대 사건이 되기 전에 가해자를 직권조사하거나 수시로 불러서 주의를 주는 등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교제폭력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인 것과 관련해 “가부장적 문화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걸 반증하고 있다”며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신체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포함 양성평등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교제폭력 피의자들은 상대를 통제, 지배하려는 성향이 강한데 여성보다는 남성이 그러한 욕구가 강한 경향이 있다”며 “긴급응급조치 범위를 넓히는 등 법이 개정돼 보완이 돼도 경찰이 현장에서 겉핥기식으로 적용되면 의미가 없으니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얼마 전 시행된 스토킹처벌법 제도가 미비하다면 유사 법안에 따라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14년 제정된 경찰청 훈령 ‘성폭력 범죄의 수사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성범죄 피해자와 신고자뿐 아니라 친족, 지인까지 모든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며 “지금 당장 법을 만들 수 없다면 이런 법으로 피해자 관계인까지 범위를 확대해 엄중하게 보호해서 피해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