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생 불편하게 살아왔습니다.”(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1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 한강대로 횡단보도 앞. 경찰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측이 대치하면서 서로 확성기와 마이크를 통해 주고받은 말이다. 전장연과 경찰 간 실랑이는 100일째 계속되고 있다. 전장연이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100일째 벌여온 투쟁은 여론 환기란 성과도 있지만, 이동권 예산 확보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일부 시민들의 반감을 사는 등 한계도 노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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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은 도로점거 시위 이틀째인 이날 오전 7시 50분쯤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방향 도로로 행진하던 중 횡단보도에서 멈춰 섰다. 휠체어를 탄 활동가 수십 명이 편도 7차로 중 2~3개 차로를 점거하자 일대 교통은 마비가 됐고, 일부 차량은 경적을 울리며 항의하기도 했다. 도로 점거를 멈추고 자진해산을 하라는 경찰의 경고 방송에도 전장연은 15분간 시위를 이어갔다.
이형숙 회장은 “100일간 지하철 선전전을 하며 장애인 권리예산을 보장하라고 외쳐왔지만 윤석열 정부는 추가경정 예산에 단 1원도 편성하지 않았다”며 “장애인 권리예산을 추경에 반영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장연은 ‘특별교통수단 운영’, ‘장애인 평생교육’, ‘탈시설 권리’, ‘하루 24시간 활동 지원’을 위한 국비 예산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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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아르바이트를 위해 지하철로 오간다는 김유민(27)씨는 “시위 이유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전달 방식이 잘못됐다”며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니 장애인 문제 해결에 우호적이었던 사람들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생 김수정(22)씨는 “개선돼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지만 시위 때문에 불편함을 겪어보니 다른 방식을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장연이 지하철 출입문이 닫히지 않게 하는 방식, 도로를 점거해 교통을 마비시키는 식의 시위 방법은 ‘비문명’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만, 우리보다 장애인 인권 보장을 중시하는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20여 년 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휠체어 워리어’ 등이 차선 막고 교통을 마비시키는 등의 투쟁 방식으로 미국 장애복지법, 영국 장애인차별 금지법 등이 통과됐다. 이 나라들은 지금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장애인 권리 개선을 위해 투쟁 중이다.
◇전장연 시위 방법 문명과 비문명 논란…“정부·정치권이 나서야”
전장연은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 촉구를 위해 오는 20일까지 매일 오전 7시 반부터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도로 행진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삭발투쟁과 오체투지 시위도 이어갈 방침이다.
정부는 장애인의 요구를 인권 문제로 넓혀 접근하는 한편, 전장연은 시위 방식의 유연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민 불편을 줄이기 위해 장애인 단체도 인내를 갖고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게끔 운동의 유연성을 고민해야 한다며 “정부는 장애인 문제로 협소하게 접근하지 말고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만들어 이동권, 사회권, 인권의 문제로 넓혀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