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꿈꾸고 수천만원 냈는데"…10대 소녀가 겪은 '악몽'

성주원 기자I 2026.02.09 13:26:46

영국 BBC, 외국인 여성 연습생 인터뷰
오디션 약속 미이행에 성희롱·감시까지
규제 사각지대 K-POP 연습생 프로그램 민낯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블랙핑크 리사를 보며 케이팝(K-pop) 스타를 꿈꿨던 10대 소녀 미유(가명)는 지난 2024년 서울의 한 연습생 프로그램에 300만엔(약 2800만원)을 지불했다. 전문 댄스와 보컬 레슨, 주요 기획사 오디션 기회가 약속됐다.

지난해 10월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북서쪽 인근 클리시-수-부아의 클리시홀에서 글로벌 K-팝 컴피티션 파리 2025(Global K-POP Competition Paris 2025)가 열려 본선 진출자들이 무대에 올라 열띤 춤 경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뉴스1)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미유는 “매주 오디션이 있을 예정이었지만,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난 7일(현지시간) BBC 인터뷰에서 밝혔다. 레슨은 거의 없었고, 선임 직원으로부터 성희롱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BBC에 따르면 미유는 프로그램 시작 3개월 후 직원이 자신을 편의점에 데려가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며 허리에 손을 올리고 “좋은 몸매”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후 그는 여러 차례 미유에게 전화를 걸어 사무실로 불렀고, 한번은 “의상을 논의하기 위해 무릎에 앉으라”고 요구했다. 미유는 “그날 이후 남자 목소리만 들어도 무서워요”라고 말했다.

BBC는 같은 아카데미에 다닌 2명의 다른 연습생도 인터뷰했다. 엘린(가명)은 같은 직원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 연습생은 본인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에 대한 부적절한 행동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해당 직원은 엘린을 회의실로 불러 “한국어를 가르친다”며 허리를 만졌다고 한다. 엘린은 “너무 무서워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 빨리 와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사생활 침해도 있었다. 엘린과 미유는 그 직원이 새벽 2~3시에 “조명을 고친다”며 여성 연습생 기숙사에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엘린은 “한번은 제가 자고 있을 때 방에 들어와 그냥 저를 쳐다봤다”며 “그 이후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연습실과 기숙사 전체에는 비디오와 오디오를 녹화하는 CCTV가 24시간 작동됐다. 엘린은 “동의서에 서명한 적도 없다”며 “직원이 우리가 춤추는 것을 보며 CCTV로 ‘이건 충분히 섹시하지 않다’는 식의 코멘트를 했다”고 주장했다.

부산대 '서머스쿨'에 참가한 대만미국벨기에일본프랑스 등 12개국 50명의 해외 대학생이 지난해 7월 17일 부산 금정구 한 댄스 연습실에서 K-POP 댄스를 배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회사 측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고 BBC는 전했다. 회사 측 법률 대리인은 “내부 규정상 여성 직원 동반 없이 여성 연습생 기숙사 출입을 엄격히 금지한다”며 “CCTV는 과거 침입자 사건 이후 안전을 위해 현관과 주방 같은 공용 공간에만 설치했고 사전 공지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2010년대 후반 개설 이후 약 200명의 외국인 연습생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규제 공백이다. 이 회사는 교육부 관할 학원이 아닌 연예 기획사로 등록돼 있어 교육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 관할 약 5800개 기획사 중 하나지만, 연습생 프로그램은 규제나 검사 대상이 아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BBC에 “현행 규정이 연예 기획사의 외국인 대상 교육을 제한하지 않아 규제가 어렵다”고 말했다.

엘린은 결국 해당 직원을 성희롱과 무단 침입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사건은 종결됐다. 그녀는 회사를 상대로 계약 위반 소송도 별도로 제기했다.

BBC가 인터뷰한 3명의 연습생 모두 즉시 말하지 못한 이유를 밝혔다. 케이팝 업계 진출 기회를 잃을까 두려웠고, 큰 돈을 지불한 부모에게 말하기 어려웠으며, 언어 장벽과 낯선 법률 시스템도 장애물이었다.

지난달 발표된 업계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획사들이 보고한 연습생은 963명으로 2020년 1895명의 절반 수준이다. 외국인 연습생은 2024년 42명으로 2022년 대비 2배 증가했지만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 일반 연습생도 데뷔까지 약 2년이 걸리고 60%만 성공하는데, 외국인은 언어·비자·업계 인맥 등 장벽이 더 높다.

그럼에도 해당 회사는 소셜 미디어에서 계속 케이팝 연습생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있다. 엘린은 “케이팝은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그와 함께 책임이 따른다”며 “최소한 이 꿈을 쫓는 아이들이 더 안전한 환경에서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유는 “힘들 때마다 케이팝을 들으며 버텼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전히 아이돌이 되고 싶다”며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유는 이어 “서울 홍대는 제가 꿈을 추구한 곳이지만, 동시에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서울 명동 에잇세컨즈 매장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케이팝데몬헌터즈 협업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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