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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짜리 천체투영기 내용연수 임의 적용…감사 받나

이종일 기자I 2023.05.31 16:45:02

인천교육과학정보원, 천체투영기 입찰 논란
내용연수 10년으로 정해 장비 노후화 주장
조달청 내용연수표에 물품명 없어 근거 모호
납품업체 "시의회 보고내용 허위" 감사 요청

인천학생과학관에 설치돼 있는 독일 자이스그룹의 천체투영기 스타마스터.
[인천=이데일리 이종일 기자] 인천시교육청 직속기관인 교육과학정보원이 20억원짜리 천체투영기의 내용연수를 임의로 정해 새 제품 입찰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제품을 판매한 업체는 정보원이 허위보고 과정을 거쳐 입찰했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했다.

31일 교육과학정보원에 따르면 정보원은 지난 8~10일 조달청 나라장터 사이트에서 인천학생과학관 천체투영실 개선사업 입찰을 했다. 이 사업은 기존 시스템을 철거하고 최신 하이브리드 천체투영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광학식 천체투영기와 디지털식 천체투영기를 연결해 동시에 투영할 수 있는 장비이다.

정보원은 이 사업을 위해 학생과학관에 설치돼 있는 기존 독일 자이스그룹의 광학식 천체투영기(제품명 스타마스터)가 내용연수 10년이 지나 노후화됐고 유지·보수 비용이 많이 든다고 지난해 12월 시의회에 보고했다. 내용연수(내구연한)는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으로 해당 기간이 지나도 고장 나지 않으면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천체투영기 내용연수 근거 모호

정보원이 보고한 ‘내용연수 10년’은 천체투영기와 관련 없이 임의로 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달청 내용연수표의 1646개 물품 중에는 천체투영기가 포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정보원은 천체투영기의 내용연수를 임의로 정해 관리했다.

정보원 관계자는 “현재 사용 중인 천체투영기는 2004년 설치한 것으로 너무 오래돼 당시 어떤 근거로 내용연수 10년을 정했는지 모르겠다”며 “조달청 지침에 내용연수가 책정되지 않은 물품은 유사제품의 내용연수를 적용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언급한 유사물품은 ‘형상투영기’로 조달청 표에 내용연수가 10년으로 기재돼 있다. 하지만 천체투영기와는 기능이 다른 제품이다. 형상투영기는 현미경과 유사한 물품으로 생물이나 물건을 렌즈로 확대해 스크린에 투영하는 장비이다.

반면 천체투영기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투영해 과학관 내부 돔스크린에 옮겨 놓는다. 이 장비는 투영기의 램프 빛을 렌즈로 통과시켜 돔스크린에서 계절별, 날짜별, 시간대별 별자리를 시간의 제약 없이 보여준다. 기능, 가격 등을 비교하면 조달청 표에는 천체투영기와 유사한 물품이 없는 셈이다.

인천학생과학관의 천체투영기로 투영한 별자리.
정보원장 A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내용연수 10년의 근거를 묻자 “(조달청에)성좌투영기나 항성투영기라는 물품명이 있을 것이다”고 말했지만 조달청 내용연수표에는 이러한 물품명이 없다. 성좌투영기(천체투영기)는 나라장터 사이트에서 입찰이 가능하다.

◇납품업체, 감사원에 감사 요청

천체투영기 스타마스터를 정보원에 팔고 유지·보수를 맡은 우성정밀광학㈜는 20억원짜리 장비의 내용연수를 수천만원짜리 형상투영기와 동일하게 책정한 것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성정밀광학㈜측은 “스타마스터는 해외에서 50년 정도 사용하는 장비이다”며 “충북자연과학교육원은 1999년 설치한 스타마스터를 25년째 사용 중인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보원이 천체투영기의 내용연수를 짧게 정해 멀쩡한 장비를 교체하는 것은 예산 낭비이다”고 비판했다.

또 “전임 정보원장인 B씨는 지난해 12월 스타마스터 수리비로 매년 5000만원씩 들어간다고 시의회에 보고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며 “2018~2021년 유지·보수 해주고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지난해 보수비는 2200만원이었고 올해는 무료로 해준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는 정보원이 하자 없는 장비를 폐기하고 새 제품을 설치하는 것이 잘못됐다며 지난 30일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했다. 또 22일 인천지방조달청에 개찰 연기를 요구했다.

정보원은 입찰에 참여한 일본 업체 2곳을 평가 중이다. 정보원 관계자는 “기존 스타마스터의 수리비는 무상 기간 3년이 지난 뒤 정보원에서 매년 5000만원 안팎을 업체에 지급하다가 2018년부터 주지 않았다”며 “작동하는 데 문제가 있어 교체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인천지방조달청은 “천체투영기 입찰에 업체 민원이 제기돼 정보원에 사실관계 확인과 검토의견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며 “검토의견이 오면 업체에 전달할 것이다”고 밝혔다. 교육청 물품 내용연수 등을 관리·감독하는 행정안전부는 “현 제도에서 모든 물품의 내용연수를 관리하기는 어렵다”며 “해당 문제를 살펴보겠다”고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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