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패권 각축전 속 지재권 보호 중요 선례 남겨
지재권 침해시 사업 철수·천문학적 손해 감수해야
양사 모두 기술적 우위·시장 선도 다지는 계기될 듯
[이데일리 김영수 기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096770) 간 전기차 배터리 분쟁이 2년여 만에 막을 내리면서 소송의 핵심이었던 ‘지적재산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 CATL 등 배터리 제조 업체들과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폭스바겐, 테슬라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마저 자체 배터리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등 향후 배터리를 둘러싼 지적재산권 보호가 주요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돼서다.
LG에너지솔루션이 지난 2019년 4월 SK이노베이션을 자사 인력 유출을 문제삼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제적으로 지적재산권 보호에 나서기 위한 조치로, 배터리 사업에서의 기술적 우위와 주도권을 지키기 위한 차원이었다. ITC는 결국 올해 2월 최종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중국을 의식해 지적재산권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바이든 행정부가 거부권 행사 대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합의를 종용한 건 어찌보면 ‘신의 한수’로도 평가된다.
| ▲미국 오하이오주의 LG와 GM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1공장 건설 현장. (사진=LG에너지솔루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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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세기의 배터리 분쟁은 지적재산권을 무시하면 해당 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천문학적인 손해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선례로 남게 됐다. 중국 조차 고의적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해선 실질 손해의 징벌적 손해배상 규모를 최대 5배까지 청구할 수 있는 특허법을 도입할 정도로 자국 기업의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는 추세다.
이번 소송은 특히 배터리는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역설계)’이 안되는 제품으로 지적재산권 보호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은 완성된 제품을 분석해 제품의 기본적인 설계 개념과 적용 기술을 파악하고 재현하는 것으로, 배터리의 경우 완성품만을 갖고 공정을 베끼기 어려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인력과 관련된 영업비밀 보호 차원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이번 소송을 통해 국제적인 기관으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았다는 점에서 글로벌 배터리 업계에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배터리산업이 급성장하면서 LG에너지솔루션과 같은 선도 기업의 인력을 영입해 시장에 진입하려는 경쟁자가 늘 것으로 예상돼서다.
|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 커머스시에 건설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 (사진=SK이노베이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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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최근 현대차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폭스바겐이 투자한 스웨덴의 너스볼트(Northvolt)는 LG화학의 일부 인력을 채용해 배터리를 연구하고 있다고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가 지난해 2월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판결 후 후폭풍을 고려해 자체 삭제하기도 했다. 이번 SK이노베이션과의 소송 결과가 중국이나 유럽 기업들의 기술 탈취 시도를 선제적으로 차단한 효과를 본 셈이다. 특허 건 수만을 놓고 본다면 CATL은 3000건 미만인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2만3610건을 보유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배터리 산업이 향후 ‘뉴 OPEC(석유수출국기구)’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분쟁 결과는 지재권 보호 강화라는 큰 교훈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양사 모두 ‘소송’이라는 악재가 걷힌 만큼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K-배터리의 저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한층 강화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