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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홈즈 유죄 평결…'여자 잡스’서 ‘희대 사기꾼’으로 몰락

방성훈 기자I 2022.01.04 16:45:44

테라노스 창립자 엘리자베스 홈즈 재판
배심원단, 검찰 기소 11건 중 사기 혐의 4건 유죄 평결
2015년 내부폭로로 사기 전모 드러나…2018년 청산
한때 실리콘밸리 최연소 여성 자수성가 억만장자
실리콘밸리 CEO 출신 최초 화이트칼라 범죄자 새역사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의 신데렐라’, ‘최연소 여성 자수성가 억만장자’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 바이오기업 테라노스의 설립자 겸 전 최고경영자(CEO) 엘리자베스 홈즈가 미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엘리자베스 홈즈 테라노스 설립자 겸 전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11건 혐의 중 ‘사기’ 관련 4건 유죄 평결

3일(현지시간) CNN방송,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연방지방법원의 배심원단 12명(남성 8명·여성 4명)은 이날 홈즈에게 적용된 11건의 기소 죄목 중 4건을 유죄로 인정했다. 배심원단은 또 나머지 7건 중 4건은 무죄로 평결했지만, 3건에 대해선 ‘만장일치 결론을 내리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을 재판부에 전했다.

이날 유죄가 인정된 4건은 모두 투자자를 속여 사기를 쳤다는 혐의와 관련된 사안들이다. 재판에 참석한 제프 쉥크 검사는 최종 변론에서 “그녀는 사업 실패보다 사기를 선택했다. 그녀는 투자자와 환자에게 정직하지 못한 선택을 했다”고 지적했다.

환자들을 기만했다는 혐의와 관련해서는 모두 무죄 평결이 나왔다. 법원의 에드워드 다빌라 판사는 향후 배심원단의 평결을 토대로 나머지 혐의들에 대한 유죄 여부 및 형량 등을 최종 선고할 예정이다. 각 혐의에 대한 최대 형량 징역 20년을 선고될 것으로 예측된다. 아직 최종 선고 기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CNN은 “배심원단은 매우 신중을 기해 이번 평결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WP도 “지난 6년 동안의 여러 언론 매체 보도, 팟캐스트 및 다큐멘터리 등을 토대로 7일 간의 숙고 끝에 배심원단의 결정이 내려졌다”며 “판결 이후 홈즈는 어머니와 연인의 손을 잡고 법정을 나왔으며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내부 폭로 후 ‘여자 잡스’에서 ‘사기꾼’ 몰락

홈즈는 19살이던 2003년 테라노스를 창립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획기적인 진단 기기 ‘에디슨’을 이용하면, 손가락 끝에서 채취한 몇 방울의 혈액만으로 암을 포함한 250여개 질병을 사전에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검사 비용도 50달러 수준으로 매우 저렴하다고 홍보했다.

이후 홈즈에게 실리콘밸리의 관심이 집중됐다. 당시 여성 CEO가 드물었던 만큼 이목이 더욱 쏠렸다. 검정색 터틀넥을 즐겨 입었던 그는 애플을 설립한 스티브 잡스에 비견되며 ‘여자 잡스’로 불리기도 했다. 홈즈는 일에 전념하겠다며 진학하던 스탠포드대도 자퇴했다.

테라노스는 무려 9억 4500만달러, 한국 돈으로 약 1조127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했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 월마트를 운영하는 월튼 패밀리 등 유명 인사들이 투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테라노스 기업가치는 2014년 90억달러(약 10조 7500억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테라노스의 혈액 질병진단 기술이 “사기”라는 내부 폭로가 터져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015년 내부 고발자를 인용해 테라노스가 개발했다는 기기의 정확성에 의혹을 제기했다. 또 실제 진단시엔 외부에서 사용하는 혈액 검사 기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실체가 없는 기술’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테라노스가 진행해 온 연구는 2016년 전부 무효 처분됐다. 또 미 검찰은 2018년 6월 홈즈와 그의 전 남자친구이자 테라노스 최고운영책임자(COO) 였던 라메시 서니 발와니 등 연루자들을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순식간에 ‘제로(0)’로 곤두박질쳤고, 같은 해 9월 결국 청산 절차를 밟게 됐다.

이 과정에서 홈즈는 과거 연인인 서니로부터 10년 동안 학대를 당해 거짓을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신이 직접 개발했다는 기술의 진위 여부조차 전혀 모르고 투자자 설득에 나섰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사기죄는 ‘거짓임을 알면서 속일 의도를 갖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입증돼야 범죄로 인정된다.

지난해 11월 미 캘리포니아 산호세 연방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엘리자베스 홈즈의 재판을 직접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AFP)
◇코로나 등으로 작년 9월 첫 재판…세간 관심 집중

검찰 기소는 지난 2018년 이뤄졌지만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홈즈의 출산 등으로 재판이 미뤄지면서 첫 재판은 작년 9월 개시됐다. 이후 재판이 열릴 때마다 법원 밖에선 진풍경이 벌어졌다. 수용 인원이 34명으로 제한된 재판장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전날 밤부터 줄을 서는가 하면, 일부는 홈즈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워싱턴대 역사학 교수인 마가렛 오마라는 “블록버스터급 재판의 블록버스터 영화와 같은 결말”이라며 “이제 그녀는 화이트칼라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실리콘밸리 CEO로 또다른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됐다”고 평했다.

한편,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만큼 배심원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배심원 교체도 3차례나 이뤄졌다. 한 명은 재판 도중 스도쿠(낱말 퍼즐)를 풀다 다른 배심원에게 목격돼 교체됐고, 또 다른 한 명은 “불교 신자라 그녀가 감옥에 가는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심리적으로 엄청난 압박을 느낀다”며 스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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